[풍경이 있는 에세이]커피숍에서 만나요

박소란

발행일 2018-07-13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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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외곽의 고요한 커피숍
다양한 혼자들과 '따로 또 같이'
어느날 우연히 아는사람 마주쳐
옆테이블과 짧은 눈인사 나누는 일
어쩌면 나는 그런 일 바라고 있는듯


에세이 박소란2
박소란 시인
어디서 글을 쓰세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평소 집에 틀어박혀 있길 즐기지만, 중요한 작업이나 마감을 앞둔 때, 오늘은 기필코 무언가를 좀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커피숍으로 간다.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쓸 때 어쩐지 안정감을 느낀다. 집에서는 장시간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아마도 딴짓하고 참견할 거리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커피숍이 좋다고는 해도 물론 아무 커피숍이나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내 경우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적당히 한적할 것. 고요한 사이사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적당히 섞여들 것. 조명은 적당히 은은한 밝기를 유지할 것. 적당한 볼륨의 재즈가 흐를 것. 또 간간이 바깥을 내다보며 한눈을 팔 수 있을 정도의 적당히 널찍한 창이 하나쯤 있을 것. 이처럼 '적당한' 요건이 갖춰진 커피숍에 앉아 달달한 커피를 주문해 두고 시를 생각하는 일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이기도 하다. 다행히 나는 이런 커피숍을 한두 곳쯤 알고 있고, 그중 한 곳은 집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다. 요즘의 나는 바깥에 나가 일을 하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 커피숍에서 보낸다.

나 자신의 생활이 이렇다 보니, 노트북 앞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커피숍에 앉아 있는 이들의 모습이 내게는 낯설지 않다. 어쩌다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24시 커피숍에 들를 때면, 그 시간에도 빈 테이블을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빼곡한 광경에 세상에나,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조금 놀라기도 하지만 이내 묘한 안도감에 젖고는 한다. 마감에 쫓기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구나. 그렇구나.

이런 나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 즉 '카공족'으로 분류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카일족'이라 해야겠지만. 카공족이든 카일족이든 물론 약간의 에티켓은 필요하다. '카공충'이 되는 건 아무래도 곤란하니까. 평소보다 좀 더 길게 머문다 싶은 날엔 음료나 디저트를 추가로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 나의 소중한 아지트가 매출 부진 같은 황망한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단골 커피숍에 대한 이 같은 각별함은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업무 형태가 유사한 동료 작가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한 작가와 만나 수다를 떨다 잠시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거의 매일 오전 커피숍으로 출근하는 매우 성실한 '카일족'이다. 조용하고 쾌적한 집을 두고 굳이 커피숍으로 향하는 이유를 묻자, 조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백색소음이나 무제한 와이파이 같은 편의적 차원과는 다른. 그는 말했다. "외롭지 않으니까." 커피숍에서라면 외로움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이야기. 여러 타인들 틈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함께라는 그 묘한 느낌이 공허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덧붙였다. "다들 같은 마음 아닐까?"

그 물음이 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커피숍 라이프를 새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왜 커피숍으로 향하는 것일까. 행여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내가 하는 잡다한 일을 옆 테이블에서 훔쳐보지는 않을까, 구석으로만 파고드는 내게도 실은 외로움이라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까. 그 마음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을까. 그러자 늘 같다고 여기던 커피숍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짐작하듯, 나는 지금도 집 앞 커피숍에 나와 이 글을 쓴다. 평일 오후 외곽의 커피숍은 고요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휴대폰을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 누군가는 잡지를 뒤적이고, 누군가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그 옆의 누군가는 꾸벅꾸벅 존다. 개중에는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얼굴도 섞여 있다. 이들은 대체로 모두 혼자다. 커피머신 곁에 앉아 숨을 돌리는 아르바이트생도, 그의 오늘치 피곤을 가늠해보는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 이토록 다양한 혼자들과 함께. 따로 또 같이.

어느 날 문득 이곳 커피숍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옆 테이블과 짧은 눈인사를 나누는 일. 어쩌면 그런 일을 나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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