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권경우

발행일 2018-07-13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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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많다고 좋은 사회 되는것 아냐
불필요한 규칙 되레 공동체 억압할 수도
최소한의 규제로 구성원간 서로 논의하고
갈등과 해소·합의하는 문화 만들어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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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러시아월드컵 결승 진출팀이 확정되었다. 일찌감치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던 프랑스와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을 펼친 크로아티아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은 16강 탈락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지만 세계 1위 독일을 이겨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월드컵의 특징은 월드컵 사상 최연소 골을 기록했고 프랑스를 결승으로 이끌어 전 세계 스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음바페 선수를 보더라도 '세대 교체'가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많은 스포츠 중에서 축구의 매력은 무엇일까?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스포츠이다. 그 배경에는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공간과 사람의 한계를 넘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근본적인 매력이 있다고 본다. 그 외에 아프리카 등 지구상에서 낙후된 지역에서 세계적 스타로 부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을 제공하는 측면과 각국에서 진행되는 프로축구리그를 비롯한 산업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선수 몸값 상승과 광고에 따른 스포츠용품사의 문제, 월드컵과 같은 메가스포츠이벤트의 부정적 측면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축구라는 스포츠에 담겨 있는 본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 축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골을 넣는 것이다. 모든 전략과 전술, 선수들의 배치와 움직임은 그 목표에 맞춰져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축구는 지극히 단조로운 스포츠가 된다. 어쩌면 지루하고 식상한 스포츠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열광한다. 축구를 보면서 환호하고, 낙담하고, 웃고, 운다.

분명한 사실은 축구의 매력이 골을 넣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다양한 매력이 오히려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규칙이 많지 않다는 점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이해하거나 즐기는 데 있어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공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 그리고 직접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이 일종의 재미이다. 단순히 골을 넣는 것만 생각하면 재미가 줄어들지만 축구장 전체 맥락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축구 경기는 최소한의 규칙으로 운영되면서 역설적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극대화한다. 매회 단막극을 만들어가는 야구와는 달리 축구는 전후반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축구 경기라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동안 관람객들은 깊은 몰입감을 통해 경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매 순간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는 축구 경기가 갖는 역동성과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의 신체가 직접 부딪히는 일이 많을수록 오히려 규칙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매순간 판단하고 결정하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의 맥락과 흐름을 지켜보는 과정이 따르는 것이다. 즉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움직이고 부딪히는 지점에서는 객관적 판단보다는 상호 협의나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판단할 수 없거나 판단을 멈추는 일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을 포기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내 것, 혹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외부의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손쉽게 판단하게 되었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판단하고 정죄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일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어떤 일을 옳다 혹은 그르다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그리고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물론 판단 불능 혹은 판단 중지가 어떤 불의나 잘못에 대해 눈을 감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축구를 할 때 하나의 공을 두고 두 선수가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매순간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이나 제도 등 규칙을 많이 만든다고 해서 더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 이상의 많은 규칙은 공동체를 규율이 지배하는 억압적인 공간으로 만들 가능성이 많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규칙이 작동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논의하고, 갈등하고, 화해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감내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축구 경기는 판단중지와 개입의 수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스포츠이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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