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26]남·북극 연구 전초기지 '아라온호'

두터운 빙벽 뚫고 계속 정진하는 바다실험실

김주엽 기자

발행일 2018-07-1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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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쇄빙선 아라온호8
16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 내항에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정박해 있다. 7천487t 규모의 아라온호는 선원 25명과 연구원 60명 등 총 85명이 승선할 수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남극 故전재규 대원 사망사고로 국민적 관심 받아
2004년 순수 국내기술로 설계 시작… 2009년 진수
독립공간에 해수·생물 분석실등 최첨단 시설 설치
빙판 두께 얇아진 북극 자원 발견·개발 경쟁 합류

1m 얼음 깨는 아이스 나이프·6800마력 엔진 탑재
극지방 번갈아가며 상설기지 물자 보급·탐사 맡아
항해 중 유빙에 조난당한 고기잡이배 구조 활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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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인천 내항 제1부두 12선석. 19일 모항(母港)인 인천항을 떠나 아홉 번째 북극 항해에 나서는 아라온호가 정박하고 있었다.

단단한 얼음에 끄떡없는 특수 강철 소재의 새빨간 뱃머리에는 '바다'와 '모두'의 순우리말 합성어인 '아라온'이 흰색 글씨로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승무원들은 북극까지 가는 20여 일 동안 배 안에서 80여 명의 탑승자가 사용할 물품과 연구 장비를 싣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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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를 항해하는 아라온호의 모습. /극지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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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는 국내에 단 하나뿐인 쇄빙선(碎氷船·Ice Breaker)이다. 7천487t 규모의 아라온호는 2004년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를 시작해 2009년 6월 진수됐다.

극지연구원들은 1992년부터 쇄빙선 건조의 필요성을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다.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기지와 외부를 오가는 이동 수단이 고무보트밖에 없어 월동연구대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소재 극지연구소 윤호일 소장은 "남극 기지에 물자를 보급하고, 남극 여러 지역을 오가며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쇄빙선이 필요했었다"며 "그러나 '배 한 척 만드는 것에 큰돈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 번번이 좌절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전격적으로 쇄빙선 건조에 나선 건 2003년 남극에서 발생한 고(故) 전재규 대원의 사망 사고 때문이다.

전재규 대원은 한국해양연구원 소속으로 이해 남극세종과학기지 제17차 월동대원으로 활동했는데, 12월 조난당한 대원 3명을 찾으러 나섰다가 보트가 전복되면서 순직했다.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당시 월동대 대장으로 전재규 대원과 함께했던 윤호일 소장은 "당시 구조팀은 모두 특수 부대원 출신으로 구성됐지만, 보트에 탑재된 GPS 장비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재규 대원이 반드시 포함됐어야 했다"며 "구조팀이 출발하기 전 '재규야. 너는 보트 밧줄을 꽉 잡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재규 대원은 해양지리 전문가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국가를 빛내기 위해 극지에서 고무보트에 의존하다 사고가 났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뭐 하는 것이냐"고 말하며 쇄빙선 건조를 지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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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해기간동안 승무원들이 사용할 물품과 연구 장비를 싣는 아라온호 크레인.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그제야 정부는 쇄빙선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해양수산부 해양개발과장으로 근무한 임현철 해수부 항만국장은 "그해(2003년) 2월부터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며 "전재규 대원 사망 사고를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쇄빙선 건조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09년 12월 인천항을 떠나 첫 항해에 나선 아라온호는 남극과 북극을 번갈아 가며 활동하고 있다.

남극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북극 다산과학기지 등 상설기지에 연료, 굴삭 장비, 식량 등 물자를 보급한 뒤 탐사활동을 벌이는 게 주 임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아라온호는 두께 1m의 얼음을 깨며 3노트(시속 5.5㎞)로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선저(배의 아랫부분)에 달린 '아이스 나이프(ice knife)'가 얼음을 양옆으로 제쳐 연속으로 얼음을 깨며 전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후미에 달린 프로펠러 2개는 깨진 얼음이 다시 얼어 배에 엉겨 붙는 것을 막는다.

6천800마력에 달하는 대형 엔진 2개가 장착돼 있어 보통 배의 3~4배가 넘는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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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선교의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최한샘(29) 아라온호 2등항해사는 "보통 선박보다 힘이 좋아 웬만한 얼음은 그대로 부수며 전진할 수 있다"면서 "얼음 때문에 길이 막히면 후진하거나, 좌우로 수평 이동할 수 있는 기능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라온호는 쇄빙 능력을 활용해 극지방 항해 중 조난당한 선박도 구조한다.

2015년 12월에는 남극 로스해에서 '이빨 고기(메로)'를 잡으러 가다 가로 15m, 세로 7m, 두께 2m의 유빙에 얹혀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썬스타호(628t급)를 구조했다.

최한샘 항해사는 "유빙 위에 올라탄 뒤, 힘으로 얼음을 부수며 썬스타호에 접근해 구조했다"며 "우리나라 선원 7명을 포함해 37명이 배에 타고 있었는데, 모두 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라온호 내부에는 해수를 정밀 분석·보관하는 발틱룸(Baltic Room)을 비롯해 수족관, 생물연구실, 건식연구실, 지구물리실, 해수분석실, 화학분석실 등이 독립된 방으로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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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 메인연구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그는 "아라온호 수준의 최첨단 연구시설을 갖춘 쇄빙선은 독일 '폴라르슈테른(Polarstern·북극성)'을 포함해 전 세계에 4척가량이 전부"라고 강조했다.

상설기지 물자 보급 이외에도 극지 연구에 배가 필요한 이유는 상설기지를 둘 수 없는 곳까지 접근해 연구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북극은 학술적 연구만 허용된 남극과 달리 최근 온난화로 북극해 표면 얼음 두께가 얇아지면서 탐사 가능 범위가 늘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자원 개발 등 북극의 경제적 가치를 선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쇄빙선을 가진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보물찾기'에 나서고 있다.

아라온호도 2016년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냉동 천연가스(가스하이드레이트)를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현재 북극 영유권을 가진 나라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 등 8개다. 이들로부터 정식 옵서버 자격을 얻은 12개국만이 북극 항로 및 자원 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 번의 도전 끝에 2013년 중국, 일본 등과 나란히 옵서버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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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전재규 대원이 남극 17차 월동연구대원으로 참여했을때 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전재규 대원. /극지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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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는 19일 인천항을 떠나 북극으로 간다. 북극 해양·해저에 대해 연구한 뒤 오는 10월 인천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남극과학기지 월동대에 물품을 보급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일정이 있다.

윤호일 소장은 "아라온호는 1년에 300일 넘는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고 있는데, 거리가 먼 북극과 남극을 오가다 보니 이동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해수부와 극지연구소는 아라온호보다 큰 1만2천t급 제2쇄빙선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윤 소장은 "두 배가 남극·북극 탐사를 각각 전담하면 보다 효율적 연구가 이뤄질 것"이라며 "극지 연구 선진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제2쇄빙선 건조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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