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대대(待對)와 생물학적 페미니즘의 한계

홍기돈

발행일 2018-08-06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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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라면 증오로 충분하겠지만
다른 세상 그리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일부 페미니즘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구릉 한 편에 해가 비치면 다른 편에는 그늘이 진다. 양(陽)이고 음(陰)이다. 양과 음은 속성상 반대되는 타자이지만, 적대적인 관계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각자 존재할 수 있는 관계로 이해해야 온당하다. 이를 인정한다면 음­양이라는 상반 관계는 배척 관계가 아닌, 상호 대립하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하는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 동아시아 사상가들은 '대대(待對)'라는 용어로 이를 개념화하였으며, 만물 변화의 추동 원리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동의하기 곤란한 일부 페미니즘 운동의 양태를 접할 때면 대대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마땅히 극복해야 하겠으나, 그렇다고 남성을 멸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호 대립하면서 갈등하되,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여성­남성)의 측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의 몇 가지 사례는 쉽사리 동의하기가 곤란하다. 또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예컨대 남성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벌어진 '성체(聖體) 훼손'을 보면, 사건이 일으킨 논란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효과는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예수는 남성이었으며, 가톨릭에서 성체는 예수의 육신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로써 성체가 훼손되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라는 남성들(서기관들, 바리새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답변하여 그네들을 돌려세우는 예수를 보건대, 그가 주장했던 사랑의 가치가 여성을 비껴서 적용되지도 않았던 듯하다.(요한복음)

천주교에서 여성은 왜 사제가 될 수 없는가. 천주교에서는 왜 낙태를 반대하는가. 내가 보건대, 성체 훼손은 이와 같은 부류의 물음 혹은 비판과 층위를 달리 한다.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물음은 나름의 근거를 따져 물을 수 있는 반면, 성체 훼손은 타자의 믿음 체계를 멸시하고 폄훼하는 데 머물러 대화의 길을 단절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체 훼손과 같은 방식의 시도는 결국 페미니즘의 고립을 자처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말 공산이 크지 않을까. 성체 훼손 사진에 이어 남성태아 훼손 사진이 게재됨으로써 워마드는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7일 열렸던 혜화역 집회 준비 과정에 불거졌다는 논란도 요령부득이기는 마찬가지다. 남자 영유아를 일러 '한남유충(韓男幼蟲)'이라 비하하는 흐름이 있었고, 기혼자는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으리라는 따위 혐오에 근거한 예측도 펼쳐져서, 결국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의 참여는 권고하지 않기로 결론 났다고 하는데, 한국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무차별적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기혼 여성들이 배신자 취급을 받아 마땅한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남성을 불가촉(不可觸) 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에 득이 될 수 있을까.

기실 생물학적 여성을 배타적인 중심으로 삼는 페미니즘의 조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2년 대통령선거를 맞아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전개하였던 국회의원 박근혜 지지는 그 전례로 꼽을 만하다. 당시 그녀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여성의 정치적 지분이 커질 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도 여성 지위를 둘러싼 상승효과가 파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반론이 있었고, 페미니즘 바깥에서도 이견이 제출되었다. 내 경우 여성문인동인 사이트 '살루쥬'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던 바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박근혜가 과연 여성 정책에서 남성 정치인들보다 진일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만약 당선 후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러한 성취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먼저 따라붙었던 답변은 마초라는 비난이었다. 이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으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한 일들이 두루 존재하며, 박근혜 지지는 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녀들이 바랐던 것처럼 정치인 박근혜는 결국 2012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그에 따른 효과도 기대했던 대로 펼쳐졌는가는 의문이다. 이 또한 내가 남성인 까닭에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싸움이 목적이라면 증오로써 충분하겠지만, 지금과 다른 세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남성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페미니즘의 일부 경향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를 망각하고 있는 듯해서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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