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특별기획-남북의 마디 인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말하다·(11)]남북 '민속문화 교류' 연결고리 기대

北에서 태어난 '민속문화' 인천에 뿌리내리다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8-07-23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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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도 연백 출신 실향민 김금화 만신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제'는 인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 등지에서 풍어제로 정착해 맥을 잇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서해안 배연신굿·대동굿 "잘 보존"
황해도 출신 김금화 만신이 맥이어

평산소놀음굿·은율탈춤도 손꼽혀
北 종교 인정안해 계승 여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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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도 지방에서 태동해 인천에 뿌리를 내린 각종 민속문화가 남북 교류의 연결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북한과 인천의 민속 문화 교류를 본격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82-2호)로 지정된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은 황해도 지역에서 마을 사람들이 선원의 안전과 풍어, 마을 전체의 번영을 위해 지내던 굿이다. 김금화(86·여) 만신이 문화재 보유자이다.

영화 '만신(萬神)'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금화 만신은 17살 신 내림을 받아 무당이 됐다. 이후 1·4 후퇴 때 인천 만석동으로 피란, 인천에서 황해도 지방 무속 신앙의 맥을 이었다.

지금도 매년 인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에서 열리는 풍어제가 바로 이 서해안 배연신굿이다.

만신과 그의 제자들은 연평도 조기 파시 전설의 주인공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모시면서 제사를 지낸다. 굿을 할 때는 풍어와 마을의 안녕 외에도 남북한 평화와 분쟁 종식을 빼놓지 않고 기원하고 있다.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은 북한의 굿 형태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금화 만신은 2014년 펴낸 자서전 '만신 김금화'에서 "굿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어렵지만, 개인 생각과 고집으로 굿이 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고향 황해도 굿에 더 애착을 갖고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황해도 평산소놀음굿(국가무형문화재 90호·보유자 이선비)도 인천에서 계승되고 있는 북한 지역의 굿 놀이다. 황해도 평산 출신 무당 장보배(1915~1991)가 1947년 월남해 강화 교동 등지에서 재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 모양의 탈을 쓰고 놀면서 풍년과 마을의 번창을 기원하는 굿이다. 현재 남구 문학동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보존과 계승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은율탈춤(국가무형문화재 61호)도 북한 황해도 은율 지방에서 전해진 탈춤이다. 은율은 실향민 2세인 박남춘 인천시장의 아버지 고향이기도 하다.

구월산 자락 아래 평야의 중심지에 위치해 농산물이 풍부했고, 서해의 수산물도 많이 들어왔다. 농수산물 집결지라 사람이 몰리니 연회도 늘었고 자연스레 탈춤판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은율탈춤은 봉산탈춤, 해주탈춤과 더불어 황해도 3대 탈춤으로 꼽힌다.

이밖에 인천시 무형문화재 12호인 강화 용두레질소리도 황해도 연백지방 농요(農謠)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인천근해 도서지방 상여소리(인천시 무형문화재 16호)도 황해도의 민요와 뱃노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런 민속문화는 지역의 음식과 복식, 풍습, 전통놀이와도 깊숙이 연관돼 있지만 북한에 이런 문화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당과 무속신앙이 대부분 사라졌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존회 김혜경 이수자는 "북한에도 이런 굿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며 "아무래도 만신이 실향민 출신이다 보니 남북 평화에도 관심이 많은데 남북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 교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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