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하늘 '廣場'으로 떠난 최인훈

이영재

발행일 2018-07-2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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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넘어 읽은 소설 중 인생의 지침을 흔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두 개의 소설을 꼽는다. 하나는 김승옥의 '霧津紀行'이고, 또 하나는 최인훈의 '廣場'이다. 물론 그 외 많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열정과 슬픔을 이기는 것은 단언컨대, 없다. 전후 한국 현대 문학은 이 두 개의 소설에서 시작됐다.

4·19세대 문학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60년 10월 '새벽'지에 발표된 원고지매수 600장에 불과한 이 중편소설 하나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광장'이 발표된 이후 '최인훈의 광장'은 한데 묶여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80년대 젊음을 보냈던 우리가 이럴진대, 4·19세대가 '광장'에서 느낄 감흥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은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로 시작되는 광장의 첫 구절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광장'은 분단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렸다. 이 모두 4· 19혁명이 있어 가능했다.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시절이지만 '광장'이 지금껏 꾸준히 읽히는 것은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민족의 분단 상태가 지속하는 한 '광장'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이데올로기의 전반적인 상황을 증거하는 발언으로 거듭 읽힐 것이다. 그리고 분단 상황이 해소되고 이데올로기로부터도 해방되고 나서도 그것은 그래도 여전히 읽힐 것이다' 라고 말했다. '광장'은 지금까지 204쇄 70만부가 팔렸다.

'광장'의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함경북도 회령 태생으로, 이제 그 역시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수많은 실향민 중 한 명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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