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일어난 1960년 '광장' 발표
회색인·서유기등 사회비판 앞장
대장암 투병끝 향년 84세로 별세
한국 현대사는 이념의 소용돌이였다. 이념에 따라 삶의 운명이 결정되는, 엄혹한 시대였다.
그 혼돈 속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어떤 이념도 선택하지 않고, '중립국'을 향해 떠난 주인공 이명준의 결말은 문단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남과 북의 사회적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한 이명준의 선택에 대중은 숨죽여 열광했다.
그래서 '광장'은 지금까지도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추앙받는다. 최인훈 이름 석자는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목으로 자리잡았다.
23일 오전 10시 46분, 향년 84세로 작가 최인훈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3월 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끝에 고양의 명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작가는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월남했다. 1952년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전후 분단 현실에 회의를 느껴 1956년 중퇴했다.
1958년 군에 입대해 6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하며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이 자유문학지에 발표되며 등단했다. → 연보 참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광장'은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지 7개월 뒤인 11월에 '새벽'지에 발표됐다. 출간 이후 현재까지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보유할 만큼 한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대작이다.
그는 '광장'에 대해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준 계기여서 덜 똑똑한 삶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 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학을 통한 사회 성찰은 광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을 통해 그는 전쟁 이후에도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사회현실을 치열하게 비판했다.
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등의 단편소설 뿐 아니라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 희곡과 산문집 등 장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문학적 성취를 이뤄냈다.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끝으로 새 작품을 발표하지 않던 그는 "한 권 분량의 새 작품집을 낼 만한 원고를 갖고 있다"며 열정을 내비쳤지만 결국 선보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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