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표류한 이명준(소설 '광장' 주인공), 월북한 곳도 종착역도 '그시절 앞바다'

목동훈 기자

발행일 2018-07-24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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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전 납북당하는 일 많아
이상과 다른 '잿빛공화국' 북녘 땅
인민군으로 참전 결국 포로로 잡혀
중립국 선택… 타고르호에 올라타
작품속 인천 남·북 이어주는 공간

23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작가 최인훈의 대표작은 소설 '광장'이다. 1960년 11월 발표된 '광장'은 이명준이라는 인물로 분단 상황의 부조리와 남북 이데올로기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인천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으면 당시 인천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천문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철학과 학생 명준은 남한 사회에 절망을 느껴 월북한다. 명준의 첫 번째 여자친구 윤애의 집, 명준이 어선을 타고 월북하는 장소는 인천이다. 명준은 인천에 사는 여자친구 윤애 집에 머물다 돌연 월북한 거다.

"뱃고동, 산새 울음. 소주잔을 들어서 쭉 들이켠다. 목에서 창자로 찌르르한 게 흘러간다. 이 목로술집은 인천에 와서부터 단골이다. (중략) 주인이 명준에게 한 귀엣말은 이런 것이었다. '이북 가는 배 말씀입죠.'"(광장 中)

명준이 한국전쟁 발발 전 이북행 배를 탄 곳이 인천이었다.

실제로 인천의 옛 부둣가 주변에는 목로술집이 밤늦은 시각까지 불을 밝혔으며, 인천 앞바다를 통해 월북하거나 납북 당하는 일도 많았다.

북한은 명준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북녘에서 만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한 명준은 포로로 잡혔고,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했다. 그가 중립국을 향해 떠나는 장면에서 인천이 또 한 번 등장한다. 인천항이다. 명준은 인천항에서 인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3,000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광장 中)

최인훈은 '아스투리아스'호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1954년 2월 인천항에서 송환을 거부한 전쟁포로 77명(중국인 포함 88명)이 영국 수송선 아스투리아스호를 타고 인도로 떠났다.

당시 인천항에선 전쟁포로를 인도 등 중립국으로 보내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도 열렸다.

특히 '전쟁포로'는 인천과 연관성이 매우 깊다.

일제강점기 때는 인천항 인근에 연합군포로수용소(신광초등학교 자리)가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남구(인천구치소 자리)와 부평(부영공원 자리)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됐다.

이 중 부평 포로수용소는 19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사건' 때 미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수백 명이 숨지거나 다친 곳이기도 하다.

명준은 인천에서 북한으로, 인천항을 통해 마지막 공간이 된 '바다'로 출발했다. '광장' 속 인천은 남한과 북한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나오는데, 실제도 그렇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인천의 위치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설 '광장'을 쓴 최인훈의 타계가 새삼 살피게 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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