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인천 1978년 동일방직

이영재

발행일 2018-08-06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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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가 최규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행사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50여 명의 여성이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념식은 중단되고 생중계되던 방송은 세 번이나 끊겼다. 한국노총행동대에 두들겨 맞고 머리채를 잡히며 밖으로 끌려나간 이들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로부터 10여 일 후, 3월 26일 새벽 5시30분 여의도 5· 16광장. 수십만 명이 모인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는 기독교방송이 전국에 라디오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6명의 여성노동자가 단상 중앙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쳤다.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2주 연속 발생한 사태는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이 둘 다 1978년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일어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날은 동일방직 대의원 대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새벽 6시경 남성노동자들이 투표작업을 준비 중인 노조사무실로 난입해 똥물을 뿌리고 여성조합원의 얼굴에 인분을 묻히는 '똥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훗날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이듬해 8월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박정희 유신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에 동일방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이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인천 동일방직이 8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경인일보는 동일방직이 지난해 말 가동을 끝내 공장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대신 이 자리에 산업사적, 노동사적 의미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일방직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늘진 노동현장과 시대의 아픔 등 한국경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1934년 일본 동양방적 인천공장으로 문을 연 동일방직은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의 문학적 무대이기도 하다. 공장 내 일부 건축물을 '노동사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그래서 설득력을 주고 있다. 현장 보존은 산업화시기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을 여성노동자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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