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70]현대-2 현대건설과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428㎞ 건설 공사중 '40%' 맡아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8-14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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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은 1968년 서울~부산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해 전체 428㎞중 40%를 책임졌다. 사진은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경인일보DB

1966년 베트남 캄란만 준설 수주
'빨리빨리'등 돌관경영으로 완공
태국 고속도로건설 경험 높은 평가
1968년 16개업체중 최대구간 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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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라 했던가. 정주영도 1960년 4·19혁명 이후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건설업체 중 국고 환원통보를 받은 업체는 대동공업, 중앙산업, 삼부토건, 극동건설, 흥화공작소, 대림산업, 현대건설 등이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삼부토건, 극동건설,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등은 부정축재자 처벌이란 예봉(銳鋒)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더욱 발전한다.

반면 '건설 5인조' 그룹의 선두를 달리던 대동공업과 중앙산업은 사정(司正)의 집중적인 표적이 돼 점차 퇴조했다.

>> 해외진출 시도

이후 현대는 다각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는데 첫 시도는 1962년 9월 현대양행의 설립이었다. 건설부문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보다 수준 높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양행(두산중공업의 전신)을 설립했던 것이다.

1963년 6월에는 내자 5억원과 AID차관자금 등 외자 425억달러를 동원해서 충북 단양에 대규모 시멘트공장(연산 20만t)을 건설했다.

1959년 당시 문경시멘트와 동양시멘트가 연 41만t을 생산했으나 수요는 45만t으로 수요초과상태였다. 정주영은 1958년에 충북 단양군 매포면에 있는 석회광 5개 광구를 1억3천여만환에 매입하고 건설공사에 착수, 1964년 7월에 완공했던 것이다.

1968년에는 연산 40만t으로 확대(내자 3억5천만원, 외자 310만달러)하고 1970년 1월에 현대건설 시멘트사업부를 독립시켜 현대시멘트(주)로 발족했다.

이후 현대시멘트는 종래 현대건설의 자체조달체제에서 벗어나 일반시판 위주로 전환했는데 1973년 5월에는 미국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1천65만달러의 차관을 도입, 연산 120만t의 대형 시멘제조업체로 성장했다.

한편 현대는 설립 이래 최초로 해외진출을 시도했는데 계기는 한국군의 베트남파병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1965년 2월 2천명의 한국군이 파병된 것이다.

처음에는 육군 공병부대 위주였으나 이후 맹호부대, 백마부대, 해병대 등 전투병 위주로 증원됐다. 미국 정부는 그 대가로 한국기업들의 베트남 진출기회를 제공했는데 이를 계기로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그 와중에서 현대건설은 국내 최초로 1965년 9월에 태국의 파티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로 큰 손해를 봤으나 국내건설업체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1966년 1월에는 베트남 캄란만 준설공사를 수주, 돌관경영으로 공사를 완공했다. '불가능은 없다'와 '빨리빨리', '대충주의'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적 경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캄란에서 15㎞ 떨어진 방오이의 주택건설공사도 수주했으며 주월 미군 대상의 세탁사업도 병행했다.

자동세탁기 16대와 디젤발전기 6대, 스팀보일러 2대 등을 구입해 나트랑, 퀴논, 캄란 등에 7개의 세탁공장을 설치, 1966년 한 해 동안 건설 및 세탁사업 등으로 총 100만여달러를 벌어들였다.

>> 국내 최대 재벌 도약


현대건설은 1968년 2월에 착공된 서울~부산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고속도로 건설경험이 전무했던 정부는 계획 초기부터 현대건설을 참여시켰는데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공사경험을 높이 산 탓이었다.

고속도로 건설에는 육군을 비롯해 현대, 대림, 동아, 삼부, 극동 등 국내 굴지의 16개 건설업체가 참여했으며 최대 구간을 시공한 업체는 현대건설이었다.

서울~수원 공구를 비롯한 전장(全長) 4차선 428㎞ 중 40%를 현대건설이 담당한 것이다. 착공 2년5개월만인 1970년 7월에 완공됐는데 총 공사비는 429억원이 소요됐고 현대건설이 수주한 금액만 전체 공사금액의 20.51%인 87억9천600만원이었다.

현대건설이 공사를 통해 얻은 이익은 3억3천만원에 불과했으나 이를 계기로 현대건설은 국내 최대의 재벌로 도약하게 됐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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