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특별기획-남북의 마디 인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말하다·(14)]교류 촉매제 기대 '고려인삼'

피란민이 심은 '개성인삼' 강화에 뿌리내리다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8-08-14 제1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1900년대 초 상인들 통해 1차 재배
일제수탈로 개성에서 씨말라갈때
강화서 '명맥' 전쟁 후 2차로 키워
면적 ↓ 시들해진 위상 '다시 주목'

2018081301000884100039931
인천 강화도의 특산물 '인삼'은 강화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개성 사람들이 피땀으로 일군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분단 이후 강화로 피란 온 개성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전파한 개성 인삼은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평화의 시대를 맞아 남북 교류의 촉매제로 기대받고 있다.

강화에 개성 인삼이 뿌리내린 경로는 과거 연구자료 등을 통해 1900년대 초반 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0년 대한지리학회지 '지리학 22호'에 실린 논문(인삼 재배지역의 형성과 전파에 관한 연구-강화도를 중심으로)은 1903년 강화를 왕래하던 개성 상인들의 전파로 1차 재배가 시작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인삼의 재배 방식이나 종삼(種蔘)을 전해주는 일은 흔치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개성 사람들이 가까운 강화로 피란을 나오면서 개성 인삼은 본격적으로 강화에 씨를 뿌리게 됐다. 이를 2차 재배라고 한다.

맨몸으로 강화도에 정착해야 했던 개성사람들은 특유의 경제 관념으로 인삼 산업을 널리 퍼트렸다. 이때부터 남한에서는 강화도가 그 유명한 개성 인삼의 명맥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고려 인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개성 인삼은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황석영은 소설 '장길산'에서 개성상인과 전라도 화순에서 올라온 가난한 모녀의 만남이 개성 인삼을 탄생시켰다는 극적인 설정을 하기도 했다.

강화에 인삼이 본격적으로 전파될 무렵 정작 개성 인삼은 일제의 수탈로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개성의 향토사학자 송경록이 쓴 '개성이야기'를 보면 일본 상인에 의해 약탈된 인삼밭은 5만871칸에 달했다.

1908년 일본이 홍삼 전매권을 탈취했고, 인삼 재배와 가공, 판매를 철저히 통제했다.

송경록은 "오랜 역사를 가진 개성의 특산물 고려인삼은 송두리째 일본 사람들에게 빼앗겼으며 개성의 인삼업자들은 일본 독점 자본가들의 치부를 늘려주는 고용자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했다.

개성 사람들은 일제에 빼앗긴 고려 인삼을 강화에서 이어나갔다. 강화는 비슷한 시기 인삼이 전파된 포천, 김포 등지와 함께 세계적인 명성의 개성 인삼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은 강화에서 인삼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1973년 전국 삼업조합 재배 면적에서 강화는 홍삼 재배 면적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생산 면적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강화도(조합 기준)의 인삼 재배 면적은 전국 12개 조합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강화의 개성 인삼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남북 공동 품질 연구와 재배 방법 공유, 브랜드 개발 등 무궁무진한 교류 사업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강화에 뿌리내린 개성 인삼이 남북 교류의 중심으로 한 번 더 비상하기를 희망한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김민재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