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0]제2의 공장 '창고' (하)

물류 대기업 키워낸 둥지 문화예술 내려앉다

정운 기자

발행일 2018-08-16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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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C동. 1940년대 지어진 대한통운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했다. 이 창고는 인천항으로 수입된 화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되다가 1990년대에는 택배 물류센터 기능을 했다. 이후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조성돼 다양한 공연 등이 열린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개항이후 수출입 물품 관리 위해 건립
CJ대한통운·한진등 인천에서 첫발 떼
1893년 무역 총액 절반 이상 점하기도

오랜 역사만큼 구조적 가치 갖춘 건물
아트·상상플랫폼 '창작 공간 리모델링'
구도심·지역 경제 활성화 시너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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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건물은 단순하다. 외벽과 지붕 이외의 시설은 최소화된다.

건물 내부 기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건물의 특성은 창고 기능에 기인한다.

많은 물건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적재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창문이 없는 창고 건물도 많다.

각종 물품을 적재·이동하기 위한 선반과 각종 장비가 들어서 있어, 복잡하고 빽빽해 보일 수 있으나 구조적으로는 가장 단순한 건물이 바로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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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내항 8부두 곡물 창고. 이 창고는 1975년 건립됐으며, 5만t의 양곡을 보관할 수 있다. 내부 기둥이 없는 단일 공간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40년 가까이 물류 창고로 역할을 해왔으나, 지금은 비어 있다. 인천시는 이 창고를 문화·예술·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상상플랫폼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항 인근에 창고가 생겨난 건 1883년 개항 이후다. 이때부터 수출입 물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창고가 항만 인근에 속속 건립됐다. 개항기 인천은 국내 최대 항만이었다.

개항이 이뤄진 것은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였으나 물동량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1907년 발간된 '인천개항 25년사'(저자 가세 와사부로, 역주 인천시 역사자료관)는 개항기 인천항의 지위를 잘 설명한다.

"1893년 무역 총액은 778만8천원인데 인천은 그중 5할1푼1리를 점하며 부산은 2할9푼9리, 원산은 1할9푼의 비율을 보인다." 이 책은 1893년부터 1907년까지 한국의 무역액을 항만별로 기록했는데, 인천항은 매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천항을 통한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천항 인근에 물류기업이 설립되고, 창고들이 운영됐다. 국내 최대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의 모태가 되는 기업도 인천에서 시작됐으며, 한진그룹 역시 인천에서 첫발을 뗐다.

CJ대한통운의 모태는 일제강점기 설립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이하 조선미창)다. 이 회사는 일본이 조선의 쌀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서 설립됐다.

일본 정부 주도로 서울에 설립됐으며, 인천에 가장 먼저 지점을 열었다. '대한통운 80년사'는 "회사가 당초 계획한 5개 수출항 가운데 가장 먼저 지점이 설치된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장이자 당시 항만 사정이 개중 나은 인천이었다"고 했다.

인천지점은 1930년 11월 21일 문을 열었으며, 그해 12월 부산과 진남포지점이 영업을 시작했다.

조선미창 인천지점 창고는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이마트 동인천점' 자리에 있었다는 게 항만업계 설명이다. 유태식(국제창고 대표이사) 전 인천물류창고업협회장은 "조선미창 건물은 현재 동인천 이마트 건물이 지어지기 전까지 여러 번 이름을 바꾸어가며 활용됐지만, 지금은 그 흔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창업자 조중훈(1920~2002)의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 한진의 창업 과정과 함께 당시 인천항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해방 전에 운영하던 보링 공장을 일제의 기업정비령에 의해 정리할 때 받은 돈과 저축해둔 것을 합쳐 트럭 한 대를 장만한 나는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의 간판을 내걸었다. 인천을 새로운 사업의 근거지로 삼은 것은 중국과의 교역을 겨냥해 무역업에 뛰어들려는 생각에서였다. (중략) 서쪽으로 중국과 상대하고 있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대중국 무역 기지로서는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상플랫폼 조감도
내항 8부두 창고를 활용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는 '상상플랫폼' 조감도. /인천시 제공

한진이 1950년대 지어 쓰던 창고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인천항에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섰고, 옛 창고 건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천항 옛 창고는 개항과 맞물려 인천의 역사가 배어 있고, 건물 구조 특성상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창고 건물을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인천시는 구도심 재생사업 일환으로 2009년 9월 인천아트플랫폼을 개관했다.

대한통운이 이용하던 창고 건물 2개 등 옛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C동의 경우 대한통운 창고 건물의 외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 창고 공간에서는 매년 30차례 정도의 전시·공연이 진행되고 있으며, 관람객은 연간 10만 명 안팎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오병석 과장은 "창고 건물은 내부 기둥이 없고, 천장이 높은 형태다. 내부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회와 공연 같은 문화 관련 작업을 하기에 좋은 조건"이라며 "특히 C동은 연극 공연이 많이 이뤄지는데 관객들의 집중도가 높다"고 말했다.

인천아트플랫폼 활용 사진
인천항 물류 창고 등을 활용해 조성한 아트플랫폼. 창고라는 건물의 특성을 활용해 전시공연을 할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아트플랫폼에서 진행된 전시, 공연 모습. /인천아트플랫폼 제공

CJ대한통운 김봉호 전무는 "인천아트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한통운 창고는 건립 이후 항만 물류와 관련한 창고로 쓰였으며, 90년대 초에는 대한통운이 택배사업에 진출하면서 전국 최초 택배 물류센터로 활용했던 곳"이라며 "매우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항 내항 8부두에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 곡물 창고도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8부두 곡물 창고는 면적 1만 2천150㎡, 길이 270m, 너비 45m다. 내부에 기둥이 없는 단일 공간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이 창고는 인천항 제2선거 건립(1974년)과 연계해 1975년 정부 주도로 건립됐다. 인천항 주요 수입 품목이었던 양곡을 보관하기 위한 장소로 40년 가까이 활용됐다.

한 번에 5만t의 양곡을 적재할 수 있었으며, 2000년대 초만 해도 창고가 비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인천 남항과 북항 등이 조성되면서 내항의 물동량이 줄었고 창고 활용도 역시 낮아졌다.

2015년 8부두 일부가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결국 창고 기능을 잃게 됐다.

인천시는 이 창고를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생산·소비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상상플랫폼 조성사업'이다.

상상플랫폼 조감도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상상플랫폼은 3D홀로그램과 가상현실 등 첨단 문화시설과 함께 공연·전시회장 등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엔터테인먼트, 공연, 전시, 창업 등 다양한 용도가 복합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인천시의 구상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 창고가 가진 장소적 역사성을 살리면서 문화 콘텐츠 등을 새롭게 양성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것"이라며 "상상플랫폼 조성사업은 구도심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부터 이 창고를 운영한 (주)동부 김종식 전 인천지사장은 "이 창고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지에서 온 사료 부원료 등을 주로 보관하던 창고"라며 "내항에서 가장 큰 창고였다. 내항 1·8부두 재개발과 맞물려 활용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과거) 인천항 물류에 큰 역할을 했듯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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