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71]현대-3 압축성장시대의 기수

경부고속도로 400억 건설… 朴정권 신뢰 '탄탄대로'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8-21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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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2월 현대건설이 준공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현대건설 홈페이지 제공

1973년 울산 쇼핑센터 운영 등
관광·서비스부문 중심축 역할

서빙고·압구정동 현대APT 건설
분양목적 '현대산업개발' 설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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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가 그 한 예다. 당시 400억원의 예산으로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음에도 정 회장은 하겠다고 나섰다.

용지(用地)를 무리하게 싼값으로 수용하고, 기반이 약해 완공 후 보수비용이 건설비보다 몇 곱절 많이 들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를 닦아 산업발전의 동맥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규모 정부발주 토목 및 건설공사는 현대가 참여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런 현대가 급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 회장이 장관들을 자기 회사의 간부 정도로 여긴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노태우 회고록(上卷)', 2011, 502면)

>> 사업 다각화 추진


정주영 회장의 경영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이 무렵부터 현대의 다각화 작업을 활성화시켰다. 1968년 2월 27일 자본금 1천만원의 경일운수를 설립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자재 수송용 화물트럭 임대를 위해서였다.

1970년 8월에는 충북 옥천의 금강유원지를 개발해 상호도 금강개발로 변경하고 강릉비치호텔(동해관광호텔)을 인수했으며 1973년부터 울산조선소 내 식당위탁관리와 울산쇼핑센터를 운영하는 등 현대그룹의 관광, 서비스업 부문 다각화의 중심축으로 역할을 했다. 1969년 4월 11일에는 현대콘크리트를 설립했다.

현대건설에 각종 콘크리트관, 블록, 벽돌 등을 공급하는 소규모회사였으나 1976년 4월 9일에 동서산업으로 변경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1973년 5월 현대건설 기술사업부를 모체로 출발했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보다 고차원의 종합기술지원과 해외건설사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기술용역전문업체로 독립시킬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1974년 2월 11일에 현대건설 기술사업부를 분리하여 자본금 1천만원의 현대종합기술개발로 발족했다가 1980년 11월 중화학투자조정정책의 일환으로 한라엔지니어링을 합병해 1982년 3월 20일에 현대엔지니어링으로 변경됐다.

동서산업은 1969년 4월 11일에 설립한 현대콘크리트로부터 비롯됐다. 현대건설에 각종 콘크리트관, 블록, 벽돌 등을 공급하는 소규모회사였던 현대콘크리트는 1971년 12월말 경영합리화의 일환으로 현대건설에 흡수돼 콘크리트제조공장으로 유지됐다.

1975년 9월 1일부로 자본금 2천500만원의 벽제콘크리트로 재분리돼 운영되다가 1976년 4월 9일에 동서산업으로 변경됐다.

>> 국내 아파트문화 주도


한국도시개발은 현대건설의 주택사업을 분리해 설립됐다. 현대건설은 1973년 초부터 주택건설작업을 본격화해 서빙고 현대아파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을 건설하면서 국내 아파트문화를 주도했다.

이후 주택건설경기가 조성되면서 현대건설은 주택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현대건설 주택사업부를 모체로 해 1976년 3월 25일에 자본금 2천만원의 한국도시개발을 설립했다.

토목건축업과 부동산 매매, 임대를 목적으로 출범했는데, 1976년 6월에는 남지산업을 흡수해 자본금을 2억1천700만원으로 확대하고 주택건설 전문업체로 거듭났다.

한국포장건설은 1976년 3월 골재와 아스콘을 생산하던 현대건설 관악중기공장 소속의 관악석산을 분리해 설립한 도로 포장 전문업체다.

자본금 1천만원에 크러셔 1대와 100t 아스팔트플랜트 1대의 시설을 갖추고 출발한 한국포장건설은 골재와 아스콘을 생산해 주로 현대그룹 각 계열사에 납품하면서 성장했다.

같은 해 7월에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토건업면허를 인수하고 1977년 12월 포장공사업 면허를 취득해 건설업에 참여했다. 또한 그해 3월 토건 및 도로포장 건설을 주력업종으로 하는 고려산업개발을, 1975년 12월에는 알루미늄 창호자재의 생산을 목적으로 현대알미늄을 각각 설립했다.

한라건설과 현대산업개발도 설립했다. 한라건설은 1977년 10월 14일에 현대양행이 해외건설사업을 목적으로 자회사(자본금 15억원)형태로 설립한 회사였다.

1978년 3월 29일에 한라개발을 흡수해 군납업, 해외 전기공사업, 중기 대여업, 항만준설 공사업, 포장공사업 등을 수행하는 종합건설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현대양행이 정부에 귀속되는 과정에서 한라건설은 현대양행으로부터 분리, 현대그룹의 계열사로 존속됐다. 1977년 10월에는 토목건축 및 아파트 분양을 목적으로 현대산업개발을 설립했던 것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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