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다시 보는 한국 프로야구 명장면·19]1994년, 현대의 제2리그 창단 추진과 '피닉스' (下)

현대 실업팀 피닉스-기존 구단들의 '돈 싸움'

경인일보

발행일 2018-09-04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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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선수 확보위해 경쟁 하던 중
현대, 1995년 '태평양' 인수 발표
피닉스, 결국 현대 선수공급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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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우선 '피닉스'라는 실업야구팀을 창단하기로 했고, 조만간 뜻을 함께하는 다른 기업들을 규합해 제2의 프로야구리그를 출범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수십억의 현금가방을 들고 예의 저돌적인 기세로 대학야구팀 숙소를 밤낮으로 누비기 시작했다.

1994년 6월 무렵 이미 그 해의 대졸 빅4로 불리던 문동환, 심재학, 안희봉, 위재영을 비롯한 상위랭커 25명이 모두 현대 쪽과 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잘 골라서 지명만 해놓으면 선수들로서는 별 수 없이 입단하게끔 되어있었기에 느긋하기만 했던 8개 프로구단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이었다.

10월31일까지는 아마추어 팀 소속의 선수와 계약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던 아마와 프로 사이의 합의는 더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몸이 달아오른 프로팀들은 '현대보다 한 장 더 얹어 주겠다'며 달려들었고, 결국 그렇게 한 개의 아마추어 팀과 여덟 개의 프로팀 사이에 치열한 돈 싸움이 시작되었다.

먼저 7월 들어 태평양이 4년 전부터 매달려온 투수 위재영을 2억 이상의 계약금과 4년 전 대학과 이중계약에 휘말렸을 때 깨끗이 물러나고 기다려준 인정에 호소한 끝에 '구두약속'을 받아냈고, 곧 LG 역시 비슷한 액수와 방식으로 타자 심재학을 잡아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단들은 현대와의 돈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고, 그 와중에 전선이 고졸예정자들에게까지 확대되면서 김승관(삼성)과 조현(LG) 등이 각각 억대의 기록적인 계약금을 받으며 프로행을 확정했다.

그 무렵 끝내 대학행으로 결론이 난 고졸 최대어 김건덕에게 건네진 제안은 2억이 넘을 정도였다.

프로팀 사장들은 '한 구단이 한 명씩만 책임지고, 배상금을 지불하고라도 선수를 빼옴으로써 현대를 저지하자'고 서로를 독려해가며 전의를 불태웠고, 그만큼 모든 면에서 지난해보다 배 이상 부풀어 오른 뜨거운 돈싸움이 펼쳐졌다.

애초에 역시 1억 가량의 계약금으로 현대를 택했던 김재걸을 돈싸움에 자존심 싸움까지 벌인 끝에 삼성이 2억1천만원이라는 황당한 액수를 던지며 끌어낸 것 역시 그런 와중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리고 문희성, 조경환, 조태상은 그렇게 프로팀으로 한 발을 옮기려다 다시 '그 돈에 다시 한 장 더'를 외친 현대의 품에 안기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5년에도 피닉스의 기세는 가라앉지 않았다. 프로 출신의 김시진과 김봉연이 코칭스태프로 가세했고, 이듬해에는 임선동과 박재홍을 LG와 해태로부터 빼앗아내며 기세를 올렸다.

그런 화려한 멤버들의 힘으로 피닉스는 실업야구리그에서 어린애 팔 비틀 듯 승리를 잡아냈고 1995년과 1996년 사이 실업무대의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며 공룡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1995년이 채 지나가기도 전, 제 2 프로야구리그의 창설 멤버라는 선수들의 꿈을 일시에 박살 내버리는 소식이 들려오게 된다.

1995 8월31일, 현대건설 이내흔 사장이 태평양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매입대금은 무려 470억원.

피닉스 선수들에게 쏟아 부었던 경악스런 계약금 수십억 원도 사실 미끼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엄청난 규모의 머니게임이었고, 이제 피닉스는 프로팀 현대 유니콘스의 전력을 빠르게 보강하기 위한 선수공급처 혹은 선수거래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대는 96년 재출범을 앞두고 태평양 시절부터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1번 타자감으로 박재홍을 보강할 수 있었고, 그 박재홍이 1번보다는 3번으로서 더 큰 효용을 가지고 있음이 입증되자 다시 문동환을 롯데로 보내면서 전준호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그 힘은 그대로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에 오른 데 이어 3년차인 1998년에는 인천연고팀 사상 첫 우승을 이루어낸 원동력이었다.

피닉스는 그저 하나의 평범한 실업팀으로 전락했고, 2002년에는 실업리그의 소멸과 함께 간판을 내리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김은식 야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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