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 따라 걷는 에코여행·(4)선감도 & 선감학원]지옥의 섬에 갇힌 소년들… 스러져간 생명의 흔적들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8-08-28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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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82년 '부랑아 교육' 미명아래 섬에 끌려와
중노동·학대 '비극의 현장' 역사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
생존자들 직접 해설 '생생' 경기도 '다크투어리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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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만 해안가에는 섬이 많다.

 

지난 편에 등장했던 오이도를 비롯해 관광지로 이름난 제부도나 대부도도 있고 풍도, 국화도, 입파도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섬이 도시 주변에 존재한다.

그 섬들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섬도 있다. 대부도 끝자락에 위치한 '선감도'다.

선감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사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모른 채 어린 소년들이 섬에 끌려왔다. 거리의 부랑아를 교육한다는 미명 하에 선감도에 '선감학원'을 세우고 가난하고 헐벗은 어린 소년들을 갇아뒀다.

선감도 여행은 선감나루터에서 시작된다. 바다 위에 비탈진 제방만 덩그러니 남았다. 제방에 발을 딛는 순간, 소년은 육지로 쉽사리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지 모른다.

마침 바닷물이 모두 빠져 회색 갯벌이 드러난 썰물 즈음, 제방에 서보니 적막함을 넘어 스산하기까지 하다. 대부도와 연결돼 자유롭게 육지를 오가는 지금의 자유가 낯설게 다가온다.

선감도에는 당시 원생들이 생활했던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원생들이 일했던 양계장이나 축산부, 양잠부 등이 그대로 있고 직원관사나 원생숙소도 일부 남았다.

다만 찾아가는 길이 녹록지 않다. 그 건물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 곳이 선감학원이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되지 못했고 가는 길도 수풀이 우거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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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역사박물관 전경.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직원관사와 양계장, 축산부 등을 지나 언덕 하나를 넘으면, 아주 깊숙한 곳에 '선감역사박물관'이 있다.

새로 지어진 박물관 곁에는 당시 원생들이 주로 숙식을 해결했던 숙소와 식당 건물이 여전히 자리했다. ㄱ자 모양의 2층 건물인 박물관 안에는 선감학원의 역사와 당시 생활상을 담은 물건들이 고스란히 전시됐다.

학생들이 입었던 원복, 신발, 일할 때 사용하던 기구 등이 진열됐다.

이 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선감학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마다 상주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직접 해설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생존자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인천시립보호소에 있다 선감학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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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역사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원복·신발.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그는 "지금도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물들이 보일 것이다. 주황색 슬레이트지붕은 모두 원생들이 거주하던 공간이었다"며 "삽, 농기구 같은 것들로 낮에는 죽도록 일하고 밤에는 매를 맞는 용도로 쓰였다. 매일 매를 맞았는데, 특히 자기 전에 어떤 이유를 대서든 매를 맞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이 정말 지옥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깜깜한 밤 죽을 걸 알면서도 소년들은 저 바다에 뛰어들었고 참 많이도 죽었다고 전했다. 비극의 역사가 불과 36년 전 일이라는 것이 더한 비극이다.

그래서 선감학원은 비극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경기도 '다크투어리즘'의 상징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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