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이영재

발행일 2018-08-28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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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광이며 운동권 출신인 자영업자 A씨
"AG로 프로야구 중단 팬들에 예의 아냐
정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 어이없어
최저임금 독약 국민들 알면서도 계속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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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자영업자 A씨는 요즘 즐겁고 행복한 일이 1도 없다고 한다. 야구광이며 대학 시절 운동권이기도 했던 A씨를 만나 왜 요즘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지 들어봤다.

A씨는 프로야구, 특히 SK 와이번즈의 열렬한 팬이다. 요즘 그를 힘들게 하는 건 '프로야구 일시 중단'이다. A씨는 말한다.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프로야구를 통째로 중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 프로 축구도 하지 않느냐. 지금이 '까라면 까는' 군사독재시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봉 수십억 원을 받는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출전 핑계로 거의 한 달을 통째로 노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A씨는 주장했다.

야구사랑이 넘치는 미국도 일본도 올림픽 때문에 프로리그를 중단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KBO는 달랐다.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일정을 중단했다. 그러자 '병역특혜논란'이 나왔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몇몇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생각한다. 몇몇 선수는 상무와 경찰청 지원을 미루고 대표팀 자리를 노렸다고 확신하고 있다. 병역 미필자가 애초 7명이었는데 부상선수 교체를 핑계로 9명으로 늘어난 걸 보라는 것이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모종의 야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A씨는 "내가 요즘 즐겁지 않은 건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편의점주다. A씨는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어이없어했다. "정부가 정책실패 등 계속 헛발질을 해놓고 왜 국민 세금으로 우리를 지원하려고 하느냐. 우리가 거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게 독약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독약을 마시고 있다. 문제는 독약인 줄 알면서도 계속 먹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말이 아팠다. "그 독약을 누가 마시냐. 결국 우리 국민들이 마시는 거다."

A씨의 말은 점점 거칠어 졌다.

A씨는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놓는 정책마다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해 '지지철회'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요즘 A씨는 차라리 월급을 또박또박 받고 52시간 근무로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던 직장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편의점 체험 1주일만 하면 무엇인 문제인지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라며 A씨는 혀를 끌끌 찼다.

A씨는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당시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A씨도 그 누구보다 민주화를 열망한 학생이었다. 도서관에 처박혀 영어단어나 외우는 그런 학생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말기 A씨는 아스팔트 위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도 제법 던졌다. 건대 사건 때에는 최후까지 남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A씨는 그때, 자신이 '겁많은 데모꾼'이었다고 말했다. 운동권 주변을 맴돌았을 뿐, 그 중심으로 뛰어들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학내 데모의 단골 멤버였지만, 늘 두 번째 줄에 섰다"고 말했다. 야학은 했으나 위장 취업할 용기가 A씨에겐 없었다. "그때 학교(감옥)에 한번 갔다 왔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운명이었는지 이상하게 그런 상황은 나를 피해 갔다." A씨와 얘기하고 있을 때 TV에 운동권 출신 공직자가 나오자 그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다. TV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내가 장남만 아니었어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저 소득계층도 더 어렵겠지만,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요즘 정말 어렵다.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뭘 제대로 하려는지 말하려다가 A씨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A씨는 얼른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A씨에게 말했다. "지금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PS: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A씨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야구가 실업팀이 주축인 대만 야구에 졌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경우는 내 평생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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