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순수를 노래한 가수 예민

'음악은 무엇인가' 근본적 물음… 나는 분교로 향했다

김우성 기자

발행일 2018-08-2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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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예민
예민은 머리가 아닌, 손과 땀방울이 기억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치즈만들기다. 주위에서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소박한 꿈만 꾸느냐"고 의아해 하지만, 그는 "의미 있는 일에는 크고 작은 게 없다"고 말한다.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젊은 시절 천재적인 재능… 박선주 데뷔곡 '귀로' 등 만들고 1·2집 내며 유명세
성공 뒤로하고 미국서 공부… 2001년부터 자비 들여 122개 분교 음악회 대장정
대중음악계 떠나 2007년부터 뮤뮤스쿨 운영, 아이들 '영감' 일깨우는 예술 교육
아무 의미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과수원 가꾸며 곡도 쓰고 책도 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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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한 차림으로 활짝 웃으며 그는 나타났다.

요즘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치즈 만들기에 몰두해 있다고 소개했다.

밥 먹고 차 마시며 이어지는 대화 속에 굳이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았고, 카메라 의식 없이 이따금 편안하게 담배도 피워물었다.

언론 인터뷰에 좀처럼 응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좋고, 잊혀도 상관없다"고 했다. 예민이라는 가수는 몰라도 자신의 음악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을 맺으며 살아움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008년, 20여 년의 음악인생을 집대성한 앨범 '오퍼스'를 내고 가수활동을 접은 지 꼭 10년이 된 예민(52)은 "그냥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일 뿐이다. 한창 음악 활동할 때라든지 또 분교음악회 다닐 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동일인인가 싶다"고 말했다.

당사자는 수긍하지 않지만, 예민은 젊은 시절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故김광석의 모교인 서울 대광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에 갓 진학한 1980년대 중후반부터 박선주의 데뷔곡인 '귀로', 여행스케치의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등을 만들고 하수빈의 데뷔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스스로는 '아에이오우', '서울역'이 수록된 1집과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이 수록된 2집을 발표해 유명해졌다.

전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룬 것들이다. 이 시기 그의 서정적이고 아릿한 음악은 1980~90년대를 살아간 이들의 정서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수 예민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예민의 음악은 자전적인 감성이 배어 있다. 노랫말에 실존 명칭이나 구체적인 연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의 음악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버지다.

국민들이 애창하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아버지 페인트공장이 있던 경기도 의왕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다.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 아버지와의 생활공간과 주변 모든 게 내 생각이나 음악,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만들어줬어요. 안양역에서 시외버스 갈아타고 내려서도 20분을 걸어 들어가는, 그 당시 의왕은 서울에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어요.

공장 근처에 밭이 한 200평 정도 있는 조그만 농가주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1년에 대여섯 번씩 그 집의 색깔을 바꾸셨어요.

분홍색 초콜릿색 빨간색, 주말에 둘이 같이 칠하곤 했죠. 아버지는 직업화가도 아닌데 회화작품을 200여 점이나 남기고 항상 음악을 들려주시기도 했어요.

정원도 예쁘게 가꾸셔서 꽃 이름도 많이 알았고요. 일찍부터 자연과 예술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신 게 저에게 컸어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 묘사한 풍광은 거의 그 동네 얘기예요."

2집 발매 직후 예민은 대중적인 성공을 뒤로하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 공부했다.

'키요라', '세발 자전거와 바둑이'가 수록된 3집과 '마술피리', '기억 속에, 그 애가 있었네'가 수록된 4집 등 귀국 후 그의 음악은 자연의 품에서 삶을 관조하고 있었다.

계속 음악활동을 하는가 싶더니 그는 갑자기 또 기타 하나 메고 1년 여정의 분교음악회를 기획했다. 자비를 들여 2001년 9월부터 1년 동안 오산 삼미분교에서 도서벽지까지 전국 122개 분교, 7만여㎞를 순례하는 대장정이었다.

/아티움오퍼스 제공

"음악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나를 분교로 데려간 것 같아요.

나한테 있어 음악은 무엇일까. 주어진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 노래를 부르던 게 일반적인 형식이었는데 과연 음악이 인간을 그렇게 만났을까? 어떤 틀에 갇혀서 그것만이 음악이고 옳은 표현이라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 노래가 항상 내 입을 쫓아다녔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1년 동안 내 노래가 어울리는 곳, 내 노래가 불렸을 때 행복해하는 공간으로 찾아간 것이죠."

첫 분교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은 전혀 집중을 못 하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노래를 하고 있는 그에게 "옥수수 드시라"며 말을 건넸다. 일방적으로 음악을 들려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실정에 맞춰 접근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이후부터는 음악회를 하기에 앞서 정성스럽게 식탁보를 깔고 둘러앉아 아이들에게 코코아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을 성숙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의 꿈을 키워 줘야 한다는 그의 뜻에 동참해 아나운서 이금희, 피아니스트 박종훈 등 문화예술인들도 힘을 보탰다.

분교음악회에서 잠깐 마주한 두세 시간의 기억을 곱게 간직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이메일로 안부를 전해온다.

"최근에야 문화사각지대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텐데, 당시는 연예인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분교를 섭외하려 들면 '애들 몇 명 데리고 무슨 음악회?'라는 반응이었고 당연히 무대랄 것도 없었죠."

교사와 주민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 가며 분교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수많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졌고, 찾아가는 문화예술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분교음악회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CF 섭외까지 들어오던 때 그는 다시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가수 예민
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음악회'에 대해 공감대가 전혀 없던 시절, 예민은 의문부호를 먼저 내미는 마을 주민과 교사들을 설득하고서야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아티움오퍼스 제공

"별안간 이유 없이 떠나서 머물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라크와의 전쟁이 벌어진 날 미국의 거리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전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아, 이게 전쟁이 난 나라인가? 저쪽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걸 이들이 알까? 그런 괴리감이 들어 인도로 무작정 넘어갔다가 열병을 두 번 앓고 겨우 살아났죠."

목숨 잃을 뻔한 경험을 하고 2000년대 중반 귀국한 예민은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곡에 착수해 2008년 '연리지', '빛나호' 등이 수록된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다.

80대 고령의 할머니가 부른 이 앨범의 타이틀곡 '나의 할머니, 그녀의 첫사랑'에는 그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혹자는 산골 소녀가 나이 들어 부른 노래 같다고도 했고, 예민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호평이 따랐다.

"저는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해 본 게 총 세 번이에요. 제 음악이 홍보라는 매개로 사람들과 인위적인 연을 맺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먼 훗날 호흡과 성량이 희미해졌을 때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불러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는데, 음악을 재개하게 된다면 미련 없이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정리한 게 마지막 앨범입니다."

대중음악계를 떠난 예민은 2007년부터 음악인류학·고고학·음악교육학에 근간을 둔 아동 대상 문화교육프로그램 '뮤뮤스쿨'(Museum & Music School)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3세계 악기를 두드리고 만지고 냄새 맡게 한다. 아이들은 악기의 소리가 아닌 두꺼비 소리와 비 오는 소리,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체험이 끝나면 저마다 원하는 재료로 세상 하나뿐인 악기를 창작하고 연주회를 열어 '내 악기만큼은 세계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제일 잘 연주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의뢰로 올해 초 평창문화올림픽에서 '1학교 1국가 문화교류' 프로젝트를 감독했던 예민은 "영감을 통해 동기가 생기고 그 동기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험, 그리고 피아노교본을 보며 예술이 아닌 손가락기술을 습득하는 경험 중 어느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지 고민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의미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과수원 가꾸며 곡도 쓰고 책도 읽고 싶다"며 미소 띤 채 먼 곳을 응시했다.

글/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예민은?

▲1966년 서울 출생

▲2003년 美코니시예술대학 현대음악작곡 전공

▲1990년 1집 '아에이오우'

▲1992년 2집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1997년 3집 '노스탤지어'

▲2001년 4집 '나의 나무'

▲2008년 5집 '오퍼스'

▲2003년 '분교음악회 숲이 된 122개의 추억'(샘터) 발간

▲2007년 (주)아티움오퍼스 설립

▲2018년 평창문화올림픽 '1학교 1국가 문화교류' 축제형프로그램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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