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항서 감독이 고마운 또다른 이유

윤종군

발행일 2018-09-05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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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베트남과 전쟁 악연
우리가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양국 국민에 깊은 상처 남겨
정치외교가 풀어내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 박감독이 치유


윤종군 동아방송예술대 교수·전 문재인대통령 청와대 행정관
윤종군 동아방송예술대 교수·문재인대통령 前 청와대 행정관
요즘 베트남에서 박항서 축구감독 대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한다. '파파'라는 애칭으로 '국민 아빠'의 반열에 올라 베트남 최고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해 12월, M-150컵 대회에서 한일전만큼이나 뜨거운 라이벌 태국과의 경기를 2대1로 이겼고, 올해 1월 아시아 23세 이하 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에 이어, 이번 2018 아시안게임 4강 진출의 쾌거를 만든 그의 실력이 만들어낸 성과일 것이다. 덕분에 한국인 베트남 관광객들은 공짜 밥에, 공짜 술까지 얻어먹게 되었고, 거리에서 만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반가움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 열풍' '한국 예찬'을 보며 마음이 흐뭇해지는 이유는 단지 그가 일궈낸 축구에서의 성과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 한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악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3년간 치렀던 한국전쟁보다 무려 5배나 긴 15년간의 전쟁기간 동안, 한국은 10여 년에 걸쳐 30만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이 전쟁에서 한국병사 5천여 명이 전선에서 사망했고 1만명 이상이 다쳤다. 지금도 1만6천여 명에 이르는 고엽제 환자가 전쟁의 후유증을 견디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베트남 국민의 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1천여명이 넘는 베트남 양민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빈안 학살'과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한국인 2세인 '라이 따이한'의 아픔이 베트남 현대사에 새겨져 있다.

그동안 이런 양국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고, 2001년엔 서울을 방문한 베트남 주석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해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역시 베트남을 방문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공식 사과로 보기는 어려운 유감 표명 정도의 발언이다.

우리는 늘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을 비판하며 공식사과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당당한가? 스스로 자문해볼 때 흔쾌히 동의가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일으킨 전쟁은 아니었지만 양국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임은 분명하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양국 국민에게 정치외교가 풀어내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를 박항서 감독이 치유해주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한국과 베트남이 새롭고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해가길 희망한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신남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가고 있다. 드라마, K-POP 등 '문화 한류'에 이어 '스포츠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성취가 더 많은 분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더 많은 양국 국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정치외교가 감당해야 할 몫도 당당히 실천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염원한다.

/윤종군 동아방송예술대 교수·문재인대통령 前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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