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특별기획-남북의 마디 인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말하다·(18)]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진 남북

사진 한 장으로 독립운동을 한 '인천의 정신'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8-09-04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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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실린 원본(왼쪽)에는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가 선명하지만, 동아일보는 이 일장기가 보이지 않도록 지웠다. 출처/손기정기념관 홈페이지 자료 캡처

손기정 선수 가슴서 치욕 지운 주역
인천지사 이길용·삽화가 정현웅…
납북·월북 알려져 교류 필요성 제기
당시 신낙균 사진부장도 지역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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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가 우리 태극기 위에 올라가는 꼴을 볼 수는 없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감격의 금메달을 따낸 남자 축구 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일본과의 결승전 때 연장 혈투를 앞둔 선수들에게 전의를 불태우게 하기 위해 강조한 말이다.

스포츠는 이념과 종교를 초월한다지만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서 일장기는 단순한 일본 국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아픈 역사를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사건은 손기정 선수의 우승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

일장기 말소사건은 경성에 있던 동아일보에서 일어났지만 사건 주역들의 행방은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사건의 주역들은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4·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남북 교류가 확대되면서 인천을 중심으로 한 남북 공동 기념 사업 추진 등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한 인천 출신 체육기자 이길용(1899~?)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뒤로 행적이 묘연하다. 인천영화학교를 졸업한 이길용은 동아일보에 입사해 인천지사에서 일하며 동시에 운동부(체육부)를 전담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투옥돼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았고 40일 뒤에 풀려났지만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47세의 나이에 해방을 맞아 복직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반탁활동 등을 이유로 북한군에 끌려갔다. 납북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길용과 함께 일장기 삭제를 주도했던 동아일보 삽화가 정현웅(1911∼1976)은 한국전쟁 당시 월북해 북한에서 화가의 삶을 살았다.

일장기는 당시 미술 담당 기자였던 청전 이상범 화백이 지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길용은 처음에 삽화가 정현웅에게 사진 수정을 부탁했다고 한다.

정현웅은 점심을 먹고 일장기를 지울 생각이었는데, 사무실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옆자리에 근무하던 이상범이 대신 일장기를 지웠다.

정현웅은 조선일보에 근무하던 당시에는 인천 계양산이 배경이었던 홍명희 연재소설 '임꺽정'의 삽화를 그리는 등 인천과의 인연도 적지 않다.

인천에서 기억되고 있는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은 당시 동아일보 사진부장 신낙균(1899~1955)이다. 인천고 출신의 그는 일본에서 사진을 배우고 돌아와 언론계에 몸을 담았다.

신낙균은 이길용, 정현웅과 함께 일장기 삭제를 주도했다가 언론계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수원북중학교에서 물리교사로 재직하다가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정부는 1977년 뒤늦게 그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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