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강남 노선 최대 60㎞ 육박
퇴근길 승객·기사들 '녹초'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됐다지만
통행료 변함없고 막히는건 여전
'고단한 현실' 개선방법 찾아봐야
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
인천 사람이라면 서울을 오가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한 번쯤은 타 봤을 것이다. 이제는 거의 탈 일이 없지만 빨간색 버스를 볼 때마다 힘든 기억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
광역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어 환기가 어렵고 뒷문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일단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내릴 수도 없으니 비행기 이코노미석 통로에서 목적지까지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하는 형벌을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리가 있어서 앉으면 다행이지만 종점에서 타지 않는 이상 퇴근 시간 이후 인천 가는 광역버스에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늦은 밤, 서 있는 사람들로 통로까지 꽉 찬 광역버스들이 내달리는 경인고속도로에서 다른 버스의 승객들을 바라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하얗게 빛나는 버스 조명 아래 피곤에 지친 흔들리는 얼굴들,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에 대한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런 감상도 잠시, 서서 갈 자리조차 마땅치 않아 차를 몇 번 보내고 나면 일단 탄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에 용케 앉은 사람들은 열이면 열, 무표정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이미 곤한 잠에 빠져들어 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아가씨든 아저씨든 가리지 않는다. 입을 반쯤 벌리고 곯아떨어졌거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흔들어가며 졸고 있거나, 새근새근 숨소리를 낼 정도로 잠들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중교통에서 그렇게 곤히 자는 사람을 한꺼번에 보기도 쉽지 않은데 퇴근길 광역버스에서는 꽤 흔한 풍경이다. 한 번 타면 가는 거리가 길고, 전철과 달리 언제 어디서 차가 막힐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불콰한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는 아저씨 옆이라도 '제발 한 자리만 났으면…' 간절하게 빌게 되는 것이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버스에서의 일상이다. 광역버스의 특성상 출퇴근과 막차 시간대에만 승객이 몰리는데, 이 시간이 가장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라 배차 간격을 좁힌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실제로 전현우 철도연구자에 따르면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오가는 광역버스의 운행거리는 25~ 30km인데 비해 인천 노선은 남인천이 40km, 송도는 50km에 달하고, 강남을 오가는 노선은 외곽순환을 우회하느라 60km에 육박한다고까지 한다. 한 번 타면 기본 1시간 반에서 2시간을 훌쩍 넘기다 보니, '대전보다 먼 인천'이란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최소 4시간을 달려야 하는 기사분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막히는 퇴근길 내내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녹초가 되어 내릴 때면 하루 종일 기점에서 종점까지 왕복하는 기사분들은 어떻게 견딜까 싶다. 실제로 왕복 2시간이 기본인 노선을 운행하다 보면 기사들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만성화된 경인고속도로에는 요금소만 있을 뿐 휴게소도 화장실도 졸음쉼터도 없다.
몇 년 전, 한동안 저녁마다 자동차로 서울에서 인천을 왔다갔다 한 적이 있었다. 늦은 밤에 운전하다가 졸립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어 아찔했던 순간이 꽤 여러 번이었다. 경인고속도로가 일반화됐다지만 통행료는 그대로 내면서 속도 제한 구간만 많아지고 시도때도없이 막히는 건 여전하니 이용자 입장에서는 뭐가 좋아졌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야 어쩌다 한 번이었지만 매일 이 답답한 길을 왕복해야 하는 운전기사들과 피로에 지친 채 몸을 맡겨야 하는 승객들의 일상은 생각만 해도 우울할 따름이다.
광역버스 폐선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다. 선택의 여지 없이 이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1천400만명의 승객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단하기만 한 광역버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때다.
/정지은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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