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단역배우 자매, 9년 만에 눈물의 장례식… 경찰 "공소시효 지나 처벌 어려워"

디지털뉴스부

입력 2018-09-07 07: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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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서는 단역배우 자매의 추모 장례식이 엄수됐다. /연합뉴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다 사망한 단역배우 자매의 장례식이 9년이 지난 끝에 치러졌다.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서는 이들의 추모 장례식이 엄수됐다.

2004년 대학원생이던 A씨는 동생 B씨의 권유로 드라마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배우들을 관리하던 관계자 12명에게서 지속해서 성폭력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A씨에게 2차 피해가 이어졌고, 가해자들의 협박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지난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동생 B씨도 세상을 등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해당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인원이 20만 명을 넘어 청와대 답변 대상이 되는 등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날 추모 장례식은 익명으로 받은 기부금과 여성가족부·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지원으로 열렸다.

추모 장례식을 연 두 자매의 어머니 장연록 씨는 "청와대 국민 청원의 20만 명 달성에 따라 꾸려진 경찰청 진상조사단에서 올해 5월 중간조사 결과를 들었다"며 "그동안 쓰러져 있느라 경황이 없어 엄마로서 장례식도 못 치러줬는데 중간조사 결과를 듣던 날 장례를 치러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벽면을 따라 두 자매의 사진이 걸렸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한 단란했던 한때, 여행 중 친구들과의 즐거운 모습 등 고인의 생전 삶을 볼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어머니 장 씨가 딸들에게 쓴 편지가 놓였다. 편지에서 장 씨는 "보물 1호, 2호 그렇게 불렀었지. 장례식을 치러주지 못해 무거운 맘으로 지냈는데 이제 그날이 왔구나"라며 "그동안 우리 딸들의 엄마여서 행복했고,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웠고 감사했다. 편히 천국에서 잘 지내렴. 훗날 엄마 만나는 날 늙었다고 못 알아보면 안 돼. 잘 가라. 잘 가라"라고 적었다.

애써 웃으며 조문객을 맞이하던 장 씨는 자신의 여고 동창들이 찾아오자 참아온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동창들에게 "너무 황당해서 숨겼다. 잘 키워서 좋은 일로 봤어야 하는데…"라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께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조문했다.

정 장관은 장 씨를 위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어머니 마음을 풀어서 딸들 편안히 보내주시고, 어머니도 힘내서 사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공간을 마련했다"며 "가신 두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여가부가 적극적으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재발 방지책을 묻자 "오늘도 국회 법사위 소위에 법안이 세 개 올라갔다"며 "법안이 통과돼 처벌을 강화하면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이 두 분의 경우 2차 피해를 본 분들이기 때문에 2차 피해를 적극적으로 줄일 것"이라며 "2차 피해가 줄어야 피해자들이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있으니까 그런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관련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는 경찰은 이날 오후 3시 40분께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박창호 경찰청 생활안전국 성폭력대책과장은 기자들과 만나 "전체 조사 대상자 20명 중 17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며 "1명은 연락은 닿지만, 조사를 거부하고 있고 1명은 행방불명 상태"라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나머지 2차 피해의 가해자로 알려진 경찰 1명은 퇴직 후 해외 체류 중이라 조사하지 못했다"며 "이들에 대한 연락과 조사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폭행) 가해자 대부분이 혐의를 부인하는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며 "사건과 관련된 850여 쪽의 자료를 확보해 이미 검토를 완료했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진상조사 중이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14년이 지나 성폭행 공소시효가 완료되는 등 법적 한계가 있어 재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박 과장은 "사람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공소시효가 마무리된 만큼 현행법상 처벌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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