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꽃]꽃

권성훈

발행일 2018-09-1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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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1922~2004)

권성훈 교수(201807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맺음을 표상하는 것처럼 이름이 잦아드는 것은, 그 만큼 관계맺음에서 멀어진다는 것.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인바, 기억 속에 당신의 이름을 꺼내어 호명함으로써 '내가' 여기 '그에게' 살아 있음을 승인받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로서 자아는 타자의 생각 속에 이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아니며 길가에 지나는 사람들같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같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유의미한 그 무엇인가 된다. 당신은 이름 속에 들어있고, 이름은 당신이라는 기억으로 타자에게 전치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그 이름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가진 '빛깔과 향기'로서 살아있다. 그렇지만 꽃과 같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피어 올려야 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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