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74]현대-6 철강 산업으로의 확대

1978년 부실기업 정리 차원 '인천제철' 인수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8-09-11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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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1978년부터 인천제철을 인수하면서 소재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현대종합상사의 세계 무역 품목 가운데 하나인 철강제품. /현대종합상사 제공

같은해 8월 현대종합상사에
부실 '대한알미늄공업'등 흡수

국내외 건설경기 호조 자재 품귀
철근·파이프류등 직접 생산 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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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철강, 알루미늄 등 소재산업에도 진출했는데, 현대가 소재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인천제철의 인수로부터 비롯됐다.

인천제철은 중·일전쟁 중인 1938년 9월 23일 진남포에서 일본 이화학흥업(理化學興業), 이연금속(理硏金屬), 주우금속(住友金屬) 등이 자본금 1천300만원(圓)을 출자해 설립한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으로 출발했다.

철강, 알루미늄, 마그네슘, 기타 각종 금속을 제조 판매하다가 해방 후 귀속재산 돼 1953년 인천공장을 모체로 대한중공업공사로 재발족됐다.

>> 소재산업 진출


당시 시설은 1천200마력 압연기와 건물 4천443평, 미가동 기계공작물 34점 등이었다. 연산 12만t의 평로(平爐), 15만5천t의 분괴중형, 1만5천t의 박판설비로 재가동한 대한중공업은 1962년 11월에 인천중공업으로 개명됐다.

인천중공업은 1964년 9월에 제철설비를 분리해 선철 연산 12만t의 인천제철을 설립했다. 이후 두 회사가 경영난에 직면하자 정부는 1970년 4월에 인천중공업을 인천제철에 합병시켜 한국산업은행으로 하여금 관리했다가 부실기업 정리차원에서 1978년 6월에 현대중공업에 인수됐다.

현대종합상사도 1978년 8월에 부실기업 인수전에 참여, 대한알미늄공업과 한국불화공업을 한꺼번에 인수했다. 대한알미늄은 국내 최초의 알미늄 제조업체로서 당초 한국알미늄으로 출발했다.

한국알미늄은 원료인 보크사이트의 확보 곤란과 기술부족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지자 1973년 7월 19일에 한국산업은행과 프랑스의 Pechiney사 간에 50대50의 비율로 합작 투자해 자본금 20억6천900만원의 대한알미늄공업으로 재발족됐다.

생산능력은 연산 1만7천500t으로 전해공장, 주조공장, 전극공장 외에 수전설비, 알루미나 저장설비 등 각종 중장비를 갖췄다. 전해공장은 알루미나를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곳으로 120기의 전기로에서 연산 1만7천500t을 생산했다.

주조공장은 6t 용해로 2기, 4t 1기, 주조기 2기, 균열로 2기를 갖추고 전해공장에서 용탕 상태로 넘어오는 알루미늄을 제품별로 주조했다. 생산되는 제품은 일반 알루미늄괴인 ingot, 새시 재료인 압연 billet, 전선제조용 wire bar, slab 등이었다.

국내 알루미늄산업이 낙후된 것은 원료인 보크사이트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데다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한알미늄은 여전히 생산부진 및 경영부실을 면치 못하다가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따라 1978년 10월 18일에 현대종합상사가 산업은행으로부터 인수했다.

>> 1975년 현대강관 설립


현대가 건설, 중공업에 특화하면서 자체수요가 엄청난 강관의 직접조달도 시도, 1975년 3월에 현대강관을 설립했다.

현대강관은 자본금 2천만원의 소규모 업체인 경일산업을 모체로 해 출발했는데 경일산업은 철근, 못, 철선 등을 생산해 현대 계열사들에 공급했다.

1977년에는 강관사업부를 신설했으며 압연공장을 선재공장으로 승격시키는 한편 1978년에는 요트제조사업에도 진출했다.

이 무렵은 국내·외적으로 건설경기가 호조를 보여 철강재 수요가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철근 파이프류는 극심한 품귀 현상이 야기돼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물량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차제에 압연사업부는 남목철재로, 요트사업부는 경일요트로, 선재공장은 울산선재로 독립시키는 한편 경일산업은 강관사업만 전념했다.

1978년 7월 7만6천평의 부지에 강관공장을 건설, 연산 26만t의 설비를 확보하고 외경 2분의 1~12인치의 강관제품을 생산했다. 1980년 5월 13일에는 자본금 70억원의 현대강관으로 개명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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