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글밭]건축에 빠진 경영학도 두번째 이야기, 파리로 가다

권선영

발행일 2018-09-1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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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독특한 작가들 세상
그들의 표현 보는 재미가 있었고
그중 유난히 설치 미술이 좋았다
나에겐 모든게 흥미롭게 다가와
결국 공간디자인 공부하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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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영 건축작가
창의적인 일에 대한 갈망으로 디자인을 공부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디자인 중에서도 어떤 분야를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 것인가?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흥미를 느끼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한 것은 미술관을 가는 것이었다. 평소에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관을 가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미술관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미술관에서도 유난히 내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설치 미술이었다. 갤러리를 들어가면 설치미술품이 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갔고 그 앞에서 한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없이 작품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을 보고 느꼈다. 내가 미술관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높은 천장에 텅 비어있는 흰색 공간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명상을 해도 좋을 것 같은 그 공간이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자유였다. 예술품을 보면 작가의 머릿속 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괴하고 독특한 그들만의 세상을 표현해 놓은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왜 설치 미술이 좋을까'를 생각해보다가 깨달았다. "아 나는 공간을 이용하는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구나." 공간과의 관계 즉, 공간과 작품 간의 스케일 관계, 형태와 공간 간의 관계 그리고 작품 색깔과 흰색공간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이 나한테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런 나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선택한 것이 공간 디자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파리로 공간디자인을 공부하러 떠났다. 파리에서 공간디자인을 공부한 곳은 '에꼴 까몽도'라는 학교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건물이 파리 퐁피두센터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내부 구조물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강의실은 유리로 뒤덮여 있어서 실내가 다 보였고, 기본적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그리고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인 엘리베이터와 계단 또한 밖으로 나와 있었다. 퀴노 블루만(Cuno Brullmann)이라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가 설계를 했는데 파리 퐁피두센터와 비슷한 건축물을 많이 지은 것 같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퐁피두센터를 지은 렌조 피아노(Renzo Piano),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 같이 일을 했던 경력이 있었다. 이렇게 퐁피두센터 같은 학교에서 나의 디자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디자인 수업 첫 번째 과제는 공간에 관한 것이었다. 5cm×5cm 정사각형 형태 11개를 가지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디자인 학교에 들어왔지만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특히나 20년이 넘게 획일적인 공간인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다양한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손 가는 대로 정사각형 두꺼운 종이를 이리저리 배치해보다가 그대로 풀을 붙여서 학교에 가져갔다. 나는 뭔가 그래도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가져갔는데, 교수님이 내 작품을 보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이건 아냐. 건축이 아냐. 뭔가가 부족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머리가 순간 띵 해졌다. 그리고는 빠르게 내 옆을 지나가는 교수님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부분이 잘못된 건가요? 어떤 게 건축적이지 않은 거죠?" 나의 질문에 교수님은 나를 빤히 보더니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그냥 내 옆을 지나갔다. 이날부터 나의 디자인공부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1학년 마지막 발표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공간 디자인과 오브제 디자인을 같이하는 학교로 유명했다. 이날은 오브제 디자인 마지막 발표날이었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오브제 용도와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이 한마디 하셨다. "음, 이건 우리 할머니라면 사용하지 않을 거야." 나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난 교수 할머니를 위해 디자인한 게 아니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내가 상상한 파리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권선영 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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