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실패한 통합, 진정한 통합은 진심과 책임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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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사무국장
무능하고 무책임한 원장은 가는 길까지 기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공용차를 써 면접을 보러 다녔을 때도, 도민과 조직을 위해 써야 할 소중한 시간을 세미나 참석 따위로 채울 때까지 모른 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기 마지막 날 보은 형태의 인사발령은 그가 지난 2년 동안 직원과 기관을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보여줬다. 무책임한 정치로 시작된 통합, 진지한 고려 없이 선임된 원장 그리고 이어진 2년간 파국은 이렇게 한 단락을 마무리 지었다.

경기도에 산하기관이 지나치게 많다면서 시작한 게 소위 공공기관 경영효율화였다. 스물네 개를 열다섯으로 만들겠다, 다시 열일곱 개로, 다시 스무 개로. 부당함을 호소하는 기관들이 먼저 대상에서 제외됐다. 도 정책이니 이행해야 하지 않겠냐는 기관들만 통합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사이에 정책 사업을 위해 새로운 기관들이 생겨났다는 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지사직을 대통령으로 가는 사다리쯤으로 생각했던 전 지사에게 공공기관 경영효율화는 경력 한 줄쯤이었을지 모르겠다.

통합 초기부터 기관은 시끄러웠다. 기간제 근로자의 월급을 왜 담당자가 내보내냐는 것이었다. 사업의 종류와 예산 항목이 많았던 舊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이하 舊중기센터)는 사업 담당자의 재량에 무게가 실렸고 상대적으로 종류가 적었던 舊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하 舊과기원)은 중앙에서 행정을 관리했던 차이가 원인이었다. 모두 나름의 역사 동안 까닭과 이유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행정적으로 기관이 폐지되어야 했던 舊과기원 출신 직원들에게는 이런 순간순간들이 전부 상처였을 것이다. 원장은 직원들의 마음을 돌아보고 해결방안을 찾는 대신 결과 없는 회의 지시만 반복했다. 결정되는 일은 없고 직원들은 지쳐갔다. 그 사이 인사팀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최근 다시금 감사대상이 된 경영관리시스템 문제는 기관장의 무능이 어떻게까지 조직을 망가뜨리고 세금을 낭비할 수 있게 하는지 보여줬다. 통합 전 양 기관 총무부서장들은 舊중기센터의 시스템을 쓰기로 약속했다. 기존과 너무 다른 업무시스템에 어려움을 느꼈던 舊과기원 출신 직원들은 이에 문제 제기를 지속했고 결국 TF가 꾸려져 舊과기원의 시스템으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도의 감사 결과가 밝혀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바꿔놓은 시스템이 현 진흥원 체제에서는 운영될 수 없는 하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舊중기센터의 시스템으로 되돌아가면서 불필요한 세금이 수억 낭비 됐고 직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통합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원장 스스로가 통합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舊중기센터와 舊과기원이 통합해 새롭게 출범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의 대표로서 그에게 주어진 과업은 누가 뭐래도 조직 통합이었다. 시스템이 문제가 되고 기간제 근로자 처우가 문제 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첫 인사발령. 그 무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경력이 몇 배나 되는 舊중기센터의 선배들이 보직을 잃었고 舊과기원 출신 신임 보직자, 본부장이 나왔다. 가능한 일이다. 젊은 부서장이 나오고 유능한 인물이 발탁되는 일이야 조직 혁신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과연 통합이라는 과제를 놓고 그와 같은 인적 쇄신이 필요한 일이었냐는 것이다. 상실감을 느낀 직원들의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특정 직원에 대한 편애는 어느 시점을 지나 혐의가 아닌 사실로 드러났다. 어느 출신 직원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감사 조치를 명하고 다른 직원의 신고사항은 모른 체했다. 퇴임 앞둔 시점의 인사발령은 화룡점정이었다. 지난해 본부장이 된 인물은 무려 '처장'으로 격상됐다. 동급의 처장들보다 10살이나 어린 데다 조직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의 초특급 승진. 민간에서도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퇴임 이후부터 원장을 대행하는 처장과 인사팀장 역시 몇 차례나 무리한 인사라며 반대했으나 억지로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

노조가 여러 차례 道 낙하산 방지를 위해 내부승진으로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건의했을 때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도망치던 원장이다. 게다가 당일까지 자신은 결코 인사발령을 내지 않으리라 두어 차례 힘주어 얘기했고 심지어 퇴임식으로 걸어가는 자리에서까지 자신은 모른다며 화를 냈다. 이쯤 되면 부도덕하다고 해야 할까. 기어코 당신은 당신이 통합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고 그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증명하고 가신 것이다.

직원들 스스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또 격려하고 있었다. 이 기고가 혹여나 직원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직원들은 자조하듯 말한다. 통합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기왕에 통합하게 되었으니 우리 스스로 한 가족으로 알고 도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 오래된 조직이었던 舊중기센터는 체계가 있었고 젊었던 舊과기원의 문화는 활력을 불러 왔다. 서로의 장점을 찾고 통합의 기반을 닦은 것은 직원들이 함께 땀 흘린 시간 덕분이었다. 여기 다시 상처를 입힌 건 공공기관의 장으로서 소양이나 책임감이라고는 한 푼도 갖지 못한 원장과 그 원장에 기대 도민의 삶 개선과 공공서비스 제공자로서 책임감을 망각한 채 일신의 영달만 좇은 자격 없는 인물들이었다.

우리 진흥원은 지난 9월, 노사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원시 모처의 아동복지 기관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땀을 흘리면서 서로를 돕는 모습에서 그간 통합으로 쌓인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녹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직원들 스스로 이렇게 잘 해내고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다음이었다. 진정한 통합을 위해 필요한 기관장은 이런 마음을 아는 인물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겉만 번지르르한 커리어를 갖춘 사람이 아니다. 통합으로 상처 입은 직원들의 마음을 보듬고 그 직원들이 정말로 도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보호하는 기관장이다. 조직원에 대한 진심과 연간 2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기관의 기관장이라는 책임감을 소중히 여기는 기관장이다.

/ 김성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노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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