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위대한 패배

전호근

발행일 2018-10-02 제2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1907~1910년 일제강점기 의병들
맨몸으로 일본군 신식무기에 맞서
이길 수 없는 전쟁 치른 이유는
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도
자유로운 삶 위해 지켜야했기 때문

2018100101000071800001121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다 죽는구나. 다 죽어."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길게 탄식을 내뱉는다. 무슨 드라마인가 물었더니 한말 의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며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드라마가 의병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냈구나 싶었다. 동학 농민 전쟁부터 시작해 한말의 의병 운동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1년여 전 나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장일순의 평화사상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학술대회에 참여했던 동학연구자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전봉준의 평화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나는 박교수의 발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전봉준의 무장투쟁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피학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전봉준의 지휘에 따른 농민군은 전쟁 내내 철저하게 불살생(不殺生)의 원칙을 지켰다. 전봉준이 내린 군령의 첫 번째 조항에는 적을 마주할 때 병기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가는 공훈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결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내용과 함께 행군하는 곳마다 절대 백성들의 물건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무지 군령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실제 동학농민군을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술했던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 따르더라도 1차 동학 농민혁명당시 농민군은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은 반면, 서울에서 파견된 홍계훈의 경군은 막대한 민폐를 끼쳤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도쿄아사히 신문', '시사신보' 등 일본측 신문에도 일본 상인 가운데 농민군에게 피해를 입은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조선잡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규율을 두고 '문명적'이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박교수는 1894년 12월에 있었던 일본군과 동학농민군 간의 갑오농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 희생자 한 명당 동학농민군 희생자는 3만 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처참한 자기희생일지언정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학농민혁명뿐 아니라 일제의 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의병도 마찬가지였다. 1907년부터 나라가 병탄되던 1910년에 이르기까지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제의 진압에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초기 독립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의병 70여 명을 일본군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몰살시키는 식이다. 의병들의 무기는 몽둥이, 낫, 도끼, 화승총 따위였고 일본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제 강점 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영규의 '강화학 최후의 광경'을 읽어보면 정원하와 이건승을 비롯한 양명학자들은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인데 동학농민군이나 이후의 의병과 독립군들은 모두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한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그들이 지키려던 나라는 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 아닌가? 그들은 그들의 가난한 무기와 움켜쥔 주먹으로 외세와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1907년 의병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온 영국의 기자 매켄지는 당시 항일 의병을 이끌던 젊은 의병 지휘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싸우다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

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도 나서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위해 못난 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면서 대사를 따라 중얼거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불꽃으로 살다가 가겠다, 이게 나의 세계다.

혹 이 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호근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