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한국지엠이 주주총회에서 R&D 법인 분리안을 통과시키면서 정상화 5개월 만에 산업은행과 노조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휴일을 맞은 21일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에서 본 공장은 태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한국지엠이 연구개발(R&D) 부문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안건을 주주총회에서 의결했다.
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과 노조는 반발하며 각각 법적 조치와 파업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손을 잡았던 한국지엠 사측과 노조, 산은은 5개월여 만에 또다시 갈라서게 됐다.
한국지엠은 지난 19일 주총을 열어 부평 본사에 있는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관련 엔지니어링센터와 디자인센터를 묶어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는 안건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엔지니어링센터와 디자인센터에 있던 인력 3천여 명은 한국지엠 소속이 아닌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소속으로 바뀌게 됐다. 한국지엠에서 법인이 분리된 것이다.
이번 주총에 산은 측 대리인은 노조가 부평 본사 3층 출입구 등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사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인 탓에 주총에 참석하지 못했다.
산은 측은 비토권(특별결의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한국지엠으로부터 의결 사실만을 통보받았다.
한국지엠은 주총 의결에 따라 법인 신설 작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지만, 산은과 노조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돼 법인 설립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산은과 노조는 법인 분할의 한국지엠이 앞으로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기 위한 준비작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산은은 입장문을 통해 "주주권 행사를 방해한 노조와 일방적인 주총 개최 및 법인분할 결의를 한 한국지엠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산은 측 대표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한국지엠 주총 참석 여건 조성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법인분할은 정관상 특별결의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1대 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 단독으로 의결할 수 없는 안건이라는 게 산은 관계자의 설명이다.
노조는 "법인 분리가 앞으로의 구조조정을 위한 발판"이라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인 분리에 따라 3천여 명이 신설 분리 법인으로 이동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추가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노조는 보고 있다.
노조는 이미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78%의 동의를 얻으며 파업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22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쟁의 조정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 파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단독 의결에 법적인 문제가 없으며, 올해 안에 연구개발 법인 설립을 마무리해 곧바로 신차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라면서도 "산은·노조 등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하면서 법인등기 등 절차를 함께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남춘 인천시장은 21일 SNS를 통해 "한국지엠 측에 제공한 주행시험장 부지 회수 등을 법률 검토하도록 담당 부서에 지시했다"며 "자동차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고용 안정에 매진해줄 것을 기대하며 부지를 제공했는데 시민사회의 동의가 있지 않다면 부지 회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시는 2005년 청라국제도시 47만 5천㎡ 규모의 땅을 최장 50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하는 내용의 '청라기술연구소 토지 임대차계약'을 한국지엠(당시 GM대우)과 체결했다.
당시 협약서에는 청라 용지를 다른 법인을 양도하거나 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신설 법인으로 이전하면 협약 당사자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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