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빛이 된 두 사람

전호근

발행일 2018-11-1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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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형 당한 동학 1대 교주 '최제우'
제자 최시형이 후천개벽 시점 묻자
"때가 있으니 마음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그의 말은 절망의 시대 비추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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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864년 3월 10일, 경상도 대구의 관덕정 뜰에서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가 참형에 처해졌다. 사도를 일으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이었다. 그의 나이 41세, 동학을 창도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의심이 없고(燈明水上無嫌隙) 기둥이 마른 것 같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다(柱似枯形有餘力)."

최제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자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861년 여름이었는데, 이후 최제우는 최시형의 득도를 인정하고 1863년 7월 23일에 그에게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바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등불이 물 위에 밝았다"는 말은 바로 바다 위에 떠오른 달 '해월(海月)'을 가리키는 비유다.

최제우가 최시형에게 도를 전수하게 된 데는 깊은 내력이 있다. 최제우가 관의 지목을 피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했다가 몰래 경주로 돌아와 은신하고 있던 1862년 봄의 일이다. 스승의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최시형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수행하던 중, 반 종지의 기름으로 스무하루 동안 밤을 새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임술년(1862) 정월이었다. 여러 달 동안 밤이 새도록 등불을 켰기 때문에 기름이 반 종지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스무하루 동안 밤새움을 했는데도 기름이 닳지 않았다. 이로써 마음에 '자연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마음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그는 누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스승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가게 된다. 최제우는 그가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당시 최제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가 아직 전라도 어딘가에 피신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시형의 체험을 기록한 이 일화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무너졌고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끼니를 잇기 어려웠으며 나쁜 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였다. 빛이 없는 시대에는 스스로 빛이 되는 수밖에 없다. 순도는 그렇게 예정된 것이다. 기름 없는 등잔에서 빛을 보았다는 것은 어둠의 시대에 자신의 몸을 살라 스스로 빛이 되겠다는 결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최시형은 스스로 빛이 되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스승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최시형의 득도를 알아차린 최제우는 자신이 오래지 않아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1863년 8월 14일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동학교도를 이끌게 한 뒤 11월에 관에 체포되어 이듬해 순도하였다. 당시 그에게 직접 도를 전수받은 제자들 대부분이 함께 죽거나 유배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동학은 거의 끊어질 뻔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처럼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에 동학은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승을 이어 이후 35년간 동학을 이끌던 최시형은 1898년 4월 5일 밤 강원도 원주에서 관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30일 그는 스승과 같은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2일 단성사 뒤편 당시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72세, 동학에 입교한 지 38년 만의 순도였다.

일찍이 그는 후천개벽의 시점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때는 그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물러가는 때이니라."

스승이 그를 남겨 후천개벽의 시대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 또한 스승의 말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절망의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고자 하였다. 마치 기름 없는 등잔이 어둔 방을 비추듯.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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