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노무현의 인사법

정진오

발행일 2018-11-1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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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퇴임후 시장 수행비서에 90도로 인사
진정성 묻어나 상대방 마음 움직이게 해
지난 지방선거때 허리 굽혔던 정치인들
지금은 목이 '뻣뻣'… 그땐 정중한척 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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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집 창문 밖에 한 달가량이나 조기(弔旗)를 내걸었던 인천시 공무원이 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이념 성향이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이른바 '노빠'도 아니었다. 그는 딱 한 차례 인간 노무현과 만났을 뿐이었다. 그 만남이 그렇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천생 시골 사람 같은 소박함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날 때고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이른바 노무현의 인사법은 그렇게 퍼져나갔다. 조기를 내걸었던 그 인천시 공무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마치 부모라도 돌아가신 양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조기를 내거는 것 말고는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보수적 성향의 이 공무원은 잘 알지도 못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왜 그렇게 애통해 했을까. 아주 사소한 인연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타계하기 7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6대 해양수산부장관을 그만둔 이듬해, 제16대 대통령 취임 1년 전인 2002년이었다. 노무현 전 해수부장관이 인천시청을 찾았다. 최기선 인천시장 시절이었다. 노 전 장관이 시장실에 들어서면서 최 시장의 수행비서와 먼저 인사를 나눴다. 노 전 장관은 그 수행비서에게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으며 악수를 청했다. 7급이었던 그 수행비서는 장관을 지낸 분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받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깍듯이 인사하던 그는 이듬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 또한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 7급 공무원의 마음속에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크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는 어디를 가나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은 것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그랬고, 퇴임하고 나서도 그랬다. '꼴통'까지는 아닐지라도 꽤 보수적인 편에 들던 그는 어느새 노무현 전도사가 돼 있었다. 그랬으니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집 앞에 조기를 한 달이나 내걸었던 것은 전혀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뒤늦게 조기를 본 어떤 이들은 6월 6일 현충일에 내건 조기를 깜박 잊고 거두지 않고 있는 줄로 알기도 했다. 인사 한 번의 힘은 이렇듯 강한 여운을 남겼다.

'인사(人事)'. 선생님께 인사를 여쭙다라고 할 때의 '인사'와 승진 인사를 단행하다라고 할 때의 '인사'는 같이 쓴다.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말할 때 보통은 '승진 인사'의 그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노무현의 인사와 인천시 7급 공무원의 사례에서 보듯 깍듯한 인사의 의미까지 더해야 할 듯하다.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인사만 잘해도 그 상대의 맘을 통째로 잡을 수 있으니 어찌 '인사를 만사'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담은 인사는 상대의 맘까지 움직이게 마련이다. 노무현의 인사는 늘 그랬다. 그 태도에서부터 진정성이 묻어났다.

불과 5~6개월 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지방선거 후보자들로부터 만날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90도 인사를 받곤 했다. 머리를 땅에 닿을 듯 인사하던 그들이 아직도 그렇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가. 아무리 둘러봐도 많지가 않다. 허리를 숙이기는커녕 오히려 목에 깁스라도 한 듯이 뻣뻣한 경우가 많다. 선거의 계절에만 잠깐 정중한 척했을 뿐이다. 하물며 가을 들녘의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우리의 정치인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정치판에는 벼만도 못한 인간들이 태반이다. 진보니 보수니, 이념을 떠나서 인사만큼은 모든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닮았으면 좋겠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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