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먼 /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 사랑의 / 호심湖心아.
박두진(1916~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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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시는 문자―언어로서 시인의 관념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시의식이 언어라는 사물의 표피를 입고, 생각의 추상이 기호의 구상으로 전환된 것. 일테면 '사랑'이라는 말 자체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기에 누구나 공감하는 '꽃'으로 표상하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랑의 체험에 의해 사랑의 온도로 정서의 결에 배태되어 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꽃의 은유'다. 이 시의 각 연 끝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의 이별을 말할 때 어느 누구에게는 '속삭임'과 같은 '비밀한 울음'으로 혼자만이 견뎌왔던 기억에 남아있고, '어느 날' 인가 '아픈 피 흘림' 또는 '엇갈림의 핏방울'처럼 육신이 찢어지는 상처로 기록되어 있으며, '황홀한 한 떨기'를 피워낸 '아름다운 정적'을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있는 미적인 시간으로도 관철된다. 이처럼 한결같이 잊을 수 없는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감각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 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당신의 마음속 호수 깊은 곳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첫사랑'의 추억이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면 '꺼질 듯 보드라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시들은 당신 사랑의 은유도 같은 이치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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