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거기가 고향같네

해방 55년 만에 귀환한 동포들
극단적 선택 이유 관객에 물어
일제가 남긴 상흔 여전히 진행중
우리 모두 그들에게 빚지고 있어
등장인물 세 명, 그들의 다른 이름


전문가 권순대2
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지난 11월 9일부터 12월 9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공유에서 지공연협동조합의 '고향마을' 공연이 있었다. 지공연은 조합원 모두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하는 공연예술인 협동조합이다. 열악한 연극 제작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공연 제작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2017년에 창립한 지공연협동조합이 두 번째 정기공연으로 '고향마을'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연극 '고향마을'은 사할린에서 영주귀국한 세 명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의 시간은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극의 공간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아파트다. 그곳에서 세 명의 할머니가 국회의원을 납치하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극은 시작한다. 연극 '고향마을'은 그토록 갈망하던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 막 정착한 할머니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말하고 있다. 연극은 사할린 동포는 누구인지 관객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끝난다.

연극 '고향마을'의 제목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임대아파트 단지 이름인 고향마을에서 가져왔다. 2000년 고향마을에는 총 489세대 967명이 입주하게 된다. 입주민은 모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이다. 해방이 된 지 55년 만의 귀환이다. 사할린 동포는 안산 고향마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4천300여 명 정도가 영주귀국하였다. 하지만 영주귀국의 조건이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이주 또는 사할린 출생자 등으로 제한되어 있어 이들 중에는 사할린에 있는 가족과 다시 이산의 아픔을 겪게 된 경우도 있다. 연극 '고향마을'은 그들 중에서 세 명의 할머니를 호명하여 일제가 남긴 상흔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연극 '고향마을'의 인물인 할머니들의 귀국은 미완의 귀향이다. 세 명의 할머니는 안산에 살면서도 정작 고향 땅을 찾지는 않고 있다. 고국에 돌아왔으나 고향 땅은 낯설기만 하다. 평생을 살았던 삶의 시간은 고향 땅이 아니라 사할린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 명의 할머니는 사할린에서 음력을 적어 넣은 달력을 직접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초복 4일 전에 배차(배추) 심고, 중복 때 무 심어요. 그러면 그거 가지고 김장하요.", "물 빠지면 바다에 나가서 조개나 새우 같은 거 많이 잡았어. 미역도 건지고. 그러려면 음력으로 언제 물이 나가고 들어오는지 알아야 했지."(최상구, '사할린', 2015)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할린의 시간은 고국에서 사용하던 음력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사할린에서의 삶의 시간으로부터 다시 단절된 세 명의 할머니가 정작 고국에서 "거기가 고향 같네."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상구의 '사할린'에는 사할린 동포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안명복의 증언은 강제동원으로 인한 이산의 가장 잔혹한 사례이다.

그의 아버지는 1939년에 사할린으로 강제동원을 갔다. 어머니와 4남매는 이듬해인 1940년 6월에 사할린으로 가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1944년 9월에 다시 일본으로 강제동원을 당하면서 이산의 아픔을 또 겪게 된다. 당시 13세의 안명복은 해방 이후에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 일제에 의해 1944년에 시행된 이중동원은 사할린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14개의 탄광에서 조선인 광부 3천여 명을 일본 본토로 다시 동원해 간 사건을 말한다. 안명복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들은 배제된 사람들 중에서도 배제된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 지금까지 영주귀국한 4천300여 명의 동포와 여전히 사할린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유즈노사할린스크 공동묘지, 고르노자보드스크 공동묘지, 우글레고르스크 인근의 사라진 공동묘지 터에 묻힌 한인들에게, 그리고 그 기나긴 세월이 지나도록 국가에 의해 단 한 번도 셈해지지 않고 사라진 사할린의 무연고 한인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연극 '고향마을'의 인물인 세 명의 할머니, 한미옥, 김순영 그리고 조인숙은 그들의 다른 이름이다.

/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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