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우측통행은 약속이다

이충환

발행일 2018-12-19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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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우측통행' 2010년 7월부터 시행
8년 지났지만 여전히 뒤섞여 '무질서 보행'
사회가 필요로 한 규칙 지켜져야 삶도 지속
오늘도 걱정스러운 그 길 불안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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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좌측통행은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보행방식이었다. 1998년 영국에서 로마제국의 채석장을 발견했는데 도로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꺼져있었다. 반출하는 돌의 하중이 길 왼쪽에 집중된 결과라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인류의 85∼90%는 오른손잡이다. 중세 봉건시대라고 다를 리 없었겠다. 오른손잡이 기사(knight)는 몸의 왼쪽에 칼집을 찬다. 말 등에 오를 때에도 왼쪽이 훨씬 편하다. 오른쪽에서 오르려면 긴 칼집이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말안장에 앉아서도 적의 왼쪽에 서야 오른손으로 잡은 칼을 최단거리에서 휘둘러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에도시대 일본의 사무라이들 역시 좁은 길에서 자존심의 상징인 칼이 서로 부딪치는 걸 피하려면 칼집이 최대한 멀리 거리를 두게 되는 통행방식을 택해야 했다.

인류의 3분의 2가 우측통행을 하게 된 것은 겨우 250년 전부터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와 미국에서 여러 필의 말이 끄는 커다란 마차가 농작물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 대형마차엔 마부(teamster)가 앉는 자리가 따로 없었다. 마부들은 왼쪽 뒤편의 말에 올라탔다. 왼손으로 말고삐를 말아 쥐고 오른손에 쥔 채찍으로 말들을 조종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다. 그 위치에서 맞은편 달려오는 마차의 바퀴와 내 마차바퀴가 충돌하는 '치명적 교통사고'를 피하려면 눈으로 직접 바퀴 사이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우측통행이 해결책이었다. 마침내 17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가 우측통행을 법으로 정했다. 프랑스에선 1789년 대혁명이 우측통행의 일대 계기가 됐다. 전통적으로 귀족은 길의 왼쪽, 평민은 오른쪽을 이용했다. 하지만 바스티유 감옥이 불타고 대혁명의 파고가 날로 높아지자 위협을 느낀 귀족들이 스스로 몸을 낮췄다. 평민들의 무리에 섞여 오른쪽으로 통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나폴레옹의 무력도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 프랑스식 우측통행을 이식하는데 큰 몫을 했다.

우리는 어땠나. 1960년대 후반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하는 노래를 배웠다. 학교 복도에서, 횡단보도에서, 큰 길에서, 심지어 역전광장에서도 모두들 왼쪽으로 걸었다. 내 등 뒤에서 화물을 산더미처럼 실은 트럭이 덮칠 듯 달려와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제와 미군정의 잔재가 겹치면서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다니는 국가 중 유일하게 사람은 왼쪽으로 다니는 나라의 국민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그러던 중 1994년 3월 경찰청이 자동차와 보행자 모두 우측통행을 하자며 캠페인을 벌였다. 특히 횡단보도에서는 우측통행을 해야 정지선을 넘는 차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횡단보도에 늘어선 핫팬츠 차림의 미녀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우측통행을 외쳤다. 15년 뒤인 2009년 10월 1일 비로소 법 개정을 통해 우측통행이 명문화되고, 이듬해 7월 1일 전면시행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길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있다. 제한된 폭의 보행로에 왼쪽으로 걷는 사람, 오른쪽으로 걷는 이들이 마구 뒤섞인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 걷는 '스몸비(smombie)'까지 합류하면 무질서는 가히 절정이다. 손에 든 가방들이 부딪치고, 어깨들이 부딪치고, 저러다 싸움 나지 걱정스러운 상황까지 발생한다. 실제로 올봄 포항에선 길 가다 어깨를 부딪치는, 이른바 '어깨빵' 시비 끝에 30대 행인이 무참하게 폭행당해 숨지는 일까지 있었다. 유사한 일들이 잦다. 물론 제각기 편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다 보면 저절로 최적의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측통행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시행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도 보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토록 어지러운 보행로를 이대로 내버려두어야 할까. 좌측통행이든 우측통행이든 그때 그 사회가 필요로 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런 약속들이 지켜져야 인류의 삶도 지속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그 길을 불안한 시선으로 걷는다.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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