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윤동주(1917~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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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
태초에 시간이 있었다. 꽃이 피듯이 시간이 개화되는 순간 그 전에 없었던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시간이 공간과 만나 이른바 시공간으로 작동하면서 세계에 있는 이 모든 것, 모두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 없음에서 있음으로 열려있는 무한한 세계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태초의 아침'은 '봄날 아침도 아니고' 또한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도 오지 않은 그야말로 태양이 최초로 비춘 '그런 날'이며 전에는 없던 '아침도 아닌 아침'이 도래한 날일 수밖에 없다. 이런 날은 '그 전날 밤에' 없었던 '빨간 꽃이 피어'나듯 태양이 솟아났는바, 마치 신의 섭리와 같이 "그 전날 밤에/그 전날 밤에" 그렇게 '모든 것이 마련'된 것. 다만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사랑에는 달콤한 독의 유혹이 어린 꽃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바로 오늘이 순백의 그런 날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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