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나의 동네 친구들

정지은

발행일 2019-01-11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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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가게 주인이 알아보면 불편
자주 가다보니 인사 나누는 사이로
인천 역외소비율 52.8% '전국 최고'
동네로 여기는 사람 많아져야 해결
친구 가게 자주 팔아주고 싶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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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김치가 잔뜩 생겼다. 자주 가는 술집 사장님의 특별 서비스다. 김장 담그는 김에 총각김치 좋아하는 게 생각나서 따로 담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니 염치 불고하고 넙죽 받아왔다. 아삭아삭한 총각김치에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까지 냉장고가 꽉 찬다. 옛날 어른들이 겨울나기를 준비하면서 쌀과 연탄을 들여놓고 김장까지 하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고 하던데, 쉽게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는 요즘인데도 사 먹는 김치와 달리 마음이 든든하다.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때도 김치를 두 종류나 놓고 먹을 수 있으니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워낙 김치가 맛있기도 하지만 일부러 생각해서 김치를 더 담가 나눠주신 그 마음 씀씀이 덕분이다.

자주 들르는 식당 사장님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나? 못 본 지 오래됐음~"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음날 겸사겸사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시킨 메뉴 외에도 김치전이 한 접시 나오고, 밥을 다 먹어가니까 마카롱을 서비스로 주신다. 오랜만에 갔더니 할 이야기도 많다. 주위에 새로 연 가게 때문에 애먹은 이야기며, 어디 식당 주인이 바뀌었다더라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동시에 새로운 동네 소식도 듣게 된다.

회사가 중구로 이사 온 지 벌써 10년, 처음에는 백반집만 가득한 동네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메뉴판에 없는 술을 특별히 내주는 가게도 있고, 얼굴도장만으로 외상을 할 수 있는 가게도 생겼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예전에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주인이 아는 척하는 것조차 불편했다. 김애란의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녀는 물건을 사러 갈 때마다 말을 걸어오는 편의점 사장이 불편해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다. 대신 꼭 필요한 말만 건네는 알바생이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큐마트를 애용한다.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 "같이 온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동네 카페 대신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하면 그만인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애용했던 것처럼….

이런 변화에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동네에 있다 보니 자주 가는 가게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주인과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누면서 '아는 사람'이 '동네 친구'가 된 것 뿐이다. 아무리 자주 가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알바생이 바뀌면 그만인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던 구월동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동네 가게' 인심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정작 사는 동네에서는 알고 지내는 가게 주인 한 명 없지만, 신포동이 '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동네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천 사람들이 인천 밖에서 돈을 쓰는 비율인 역외소비율이 52.8%로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인천에서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인천e음카드'를 만들고 홍보도 한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건은 인천을 동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어서 편하게 자주 들를 수 있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동네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다면 자주 가서 팔아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꼭 인천에 거주하고 있지 않더라도 인천을 동네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좋겠다. 중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돈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나처럼 여기서 직장을 다니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중구 구민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동네'란 무엇인지 여전히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는 이야기다.

인천의 민선 7기 시정 슬로건이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이라고 한다. 살고 싶은 도시야말로 혼자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느낌이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풍요로움에서 행복을 느낀다"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중요한 것은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라는 주위 어른들의 충고가 새록새록 하다. '오지랖' 대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동네 친구들과 올해는 또 어떤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일단 오늘 저녁에 술과 음식만이 아닌 주인장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네 친구'의 가게에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

/정지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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