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91]현대-23 현대중공업 (상-종합중공업체로 성장)

2015년 세계 최초 '선박 2천척' 건조 인도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9-01-15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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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의 모태는 1970년 3월 현대건설에 설치된 조선사업부로 시작됐다. 현대중공업은 이후 꾸준히 발전하며 한국 조선업을 세계 1위로 이끈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제공

미포만에 50만t급 조선소 준공
1974년 '1억달러 수출의 탑' 수상
정몽준 사장 취임후 계열사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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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해양, 플랜트, 건설장비 등을 주업으로 하는 현대중공업의 모태는 1970년 3월 현대건설 내에 설치된 조선사업부다. 정부가 제3차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현대그룹에 조선소 설치를 권유한 때문이다.

조선사업부는 같은 해 9월 영국 조선회사였던 A&P 애플도어 및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 및 판매 협약하고 그해 12월 정부로부터 현대울산조선소 사업계획을 승인받았으며 이듬해인 1971년 2월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사에 26만t급 원유운반선 2척을 3천95만달러에 수주하는 등 초스피드로 진행됐는데, 다음과 같은 비화(秘話)가 있다.

>> '조선사업부'로 시작

1970년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부지를 울산 미포만 백사장으로 확정하고 영국 최대의 버클레이즈은행을 찾아 4천300만달러의 차관을 요청했으나 이 은행은 현대의 기술력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

정 회장은 버클레이즈은행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정 회장은 지갑에서 500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그 속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끈질기게 롬바톰 회장을 설득해 바클레이즈로부터의 차관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영국 정부 수출신용보증국(ECGD)의 승인이 통과되어야 차관이 실현되는데 여기서 또다시 제동이 걸린 것이다. ECGD는 정 회장에게 신조선 공급증명을 요구한 것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대외차관사업이 부실해질 경우 영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수소문 끝에 생면부지의 인물인 그리스 썬 엔터프라이즈(Sun enterprise)의 조지 리바노스 회장에게 매달려 리바노스(Livanos)사로부터 26만t급 원유운반선 2척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1973년 12월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를 분리해서 현대조선중공업(주)로 설립하는 한편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부터 혼성차관 5천14만달러와 내자 74억원을 투입해 1974년 6월 울산 미포만에 최대건조능력 50만t급의 초대형 조선소를 준공하고 11월 '1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로 국내 경제가 한 치 앞도 예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룩한 쾌거여서 더욱 돋보였다. 1975년 4월에는 수리 전문 조선소인 현대미포조선소를 설치하고 1976년 2월 정부로부터 엔진사업을 승인받은 뒤 그 해 7월 엔진사업부를 출범시켰다. 1977년 중전기사업부와 기관차사업부를 발족시켰다.

1978년 2월 상호를 현대중공업(주)로 변경하고 같은 해 8월 기관차사업부를 현대차량(주)로 분리 독립시켰으며 1979년 2월 국내 최초로 컨테이너선을 건조했다.

1980년 4월 한국형 구축함 1호를 진수했으며 1982년 5월 정주영 회장의 6남 정몽준이 제4대 사장에 취임했다. 현대중공업은 1981년 현대특수화학, 1985년 현대해양개발, 1986년 현대종합제철, 1989년 현대엔진공업, 1993년 현대철탑산업, 현대로보트산업, 현대중전기, 현대중장비산업 등을 각각 합병했다.

국내 첫 7천t급 '세종대왕함' 진수
세계 최대 19만t급 쇄빙선 개발
'글로벌 500대기업' 9년연속 선정

>> 2002년 현대그룹서 분리


2000년 3월에는 정주영 명예회장 아들들 간에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경영권 승계 다툼이 벌어졌는데 2001년 3월 정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각 계열사가 분리 독립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중공업은 2002년 2월 계열사였던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돼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재출범했다. 최대주주도 현대상선에서 정주영의 6남인 정몽준으로 바뀌었으며 2002년 5월에 현대중공업이 삼호중공업을 인수했다.

2004년 12월 선박 설계와 검사를 전담하는 미포엔지니어링을, 2008년에는 물류 전문기업인 (주)힘스를 각각 세웠다. 2006년에는 잠수함인 '손원일함'과 4천500t급 구축함인 '최영함'을 각각 진수했다.

2007년 5월 한국 최초로 7천t급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진수했다. 2008년 CJ그룹 계열사였던 CJ투자증권을 인수해 하이투자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9년 현대종합상사, 2010년 현대오일뱅크 등을 잇따라 인수해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로 편입했다.

2011년 2월 세계 최초로 선박 1천700척을 인도했고, 8월 세계 최대 19만t급 쇄빙 상선을 개발했다. 2012년 5월 세계 최고 효율의 SE태양전지를 개발하고, 2014년 2월 세계 최초로 '바다 위 LNG 기지' 건조에 성공했으며, 11월에는 건설장비 굴삭기가 영국에서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2015년 5월 누계기준 세계 최초로 선박 2천척을 인도했으며, 같은 해 8월 미국의 경제지 '포춘'지로부터 '글로벌 500대 기업'에 9년 연속으로 선정됐다.(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기업, 굿모닝미디어)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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