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월북 작가 황영준

정진오

발행일 2019-01-17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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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지막 어진화가 이당 김은호 제자
인천 매개 사제의 연… 월북 후 종군화가
이념·친일 잣대로 회합까지 막아선 안돼
남북 문화예술 교류로 '상봉展'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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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갔다가 어떤 미술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북한 미술작품 전문 전시관이었다. 그 중국인 미술관 대표는 오랫동안 북한의 미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했다. 북한의 유명 작가들이 그린 작품 수천 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가 전시되어 있지 않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 화봉(華峰) 황영준(1919~2002)의 그림은 풀세트로 있었다. 충남 태생인 황영준은 월북 작가다. 1950년 6·25 전쟁이 나자 북으로 갔다.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가로 불리는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제자다.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등이 동학이다. 황영준은 북에서 공훈 예술가 칭호를 받을 정도로 작품 세계가 우뚝하다. 황영준이 김은호의 제자라는 얘기를 듣고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인천이었다. 이당이 인천 관교동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2명의 임금 어진을 제작한 이당 김은호와 북한의 최고 미술 작가 황영준은 인천을 매개로 하여 사제간의 연을 이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황영준의 작품은 북에서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만큼 다양했다. 그 중국인 미술관 대표는 황영준의 수많은 연습 작품도 많이 갖고 있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황영준이 월북 하자마자 종군화가로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전투 현장의 최전선까지 들어가 화폭에 담았다. 길가에 길게 늘어선 부서진 차량 행렬 작품과 두 동강이 난 채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 작품은 묘하게 대비되었다. 비행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을 차량과 육상에서의 총탄 세례를 받고 추락했을 비행기의 모습이 서로 포개졌다. 못쓰게 된 3대의 탱크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 미군 탱크로 보였다. 포신을 땅에 처박고 있는 것, 양쪽의 궤도가 벗겨진 채로 있는 것, '824'라는 탱크의 고유번호까지 선명한 것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황영준은 평양미술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만년까지 작품활동에 매진했다고 한다. 금강산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2001년에는 '금강산 화책(金剛山 畵冊)'이란 화보집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대단한 창작열이 아닐 수 없다. 그 '금강산 화책' 첫 장에 이렇게 썼다. '자연과 생활에 대한 고상한 미는 용암처럼 솟구치는 열정과 지향이 없이는 창조되지 않는다.' 용암처럼 뜨거운 예술혼이 있었기에 황영준만의 고상한 미가 창출될 수 있었을 게다.

황영준의 그림 세계를 열어젖혀준 이당 김은호의 예술관도 준엄했다. 인천관립일어학교에서 수학한 이당은 측량기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고서를 베끼는 일을 하게 되면서 빼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묘사력이 뛰어난 그에게 대표적 친일 세도가 송병준이 초상화를 맡겼다. 고종과 순종의 초상을 제작하는 등 당대 인물화의 대표작가로 떴다. 후진을 양성함에 있어서 개인의 품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고 한다. 이당 또한 세상 뜨기 직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을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열정이 드높았다.

황영준은 2002년 남쪽에 두고 온 가족들과 상봉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그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황영준과 이당이 인천을 고리로 하여 연결된다고는 하지만 이당은 여전히 친일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문제가 있고, 황영준은 이념적 잣대로 봤을 때 월북작가란 색깔이 씌워질 수 있다. 이들 문제가 남북으로 갈라진 사제간의 회합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당 김은호와 화봉 황영준, 이 두 거장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남북의 문화예술 교류가 이당과 화봉의 상봉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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