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특별기획-남북의 마디 인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말하다·(23)]등대 문화유산 교류사업 거점

최초로 불 밝힌 인천 '남북 등대 교류' 중심에 서야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9-01-21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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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남포 앞바다에 위치한 자매도 등대. 이 등대는 1910년 전후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Lighthouse Directory 제공

1903년 팔미도 이후 北에도 세워져
불필요한 개발 안해 원형보전 양호
IALA 선언문 채택 장소 책임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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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는 1903년 6월 1일 처음 불을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팔미도 등대처럼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국 등대·등표 23개를 등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북한의 등대는 현재 어떻게 보존·관리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등대의 출발점 인천을 중심으로 한 북한 등대 역사·문화 교류 사업이 요구되고 있다.

1903년 한반도의 관문이었던 인천항 주변에 최초의 등대가 설치됐다. 이후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산하의 등대국은 1906년 항로표지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전국 해안을 따라 등대를 설치했는데, 지금의 북한 지역인 서도와 자매도, 찬도, 피도, 비발도, 수운도 등에도 등대가 들어섰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반도 연안과 항만 곳곳에 등대를 설치했다.

해양수산부가 편찬한 '대한민국 등대 100년사'를 보면 이때부터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전까지 우리나라 연안과 항만에는 121개의 등대가 설치됐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66개가 파괴됐다.

근대 등대 건축 원형을 갖춘 시설물 절반 이상이 파괴됐고, 북한과 남한에서는 각각 등대 복구 작업을 벌였다.

분단 이후 북한의 등대가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은 없다. 포항에 있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올해부터 북한 등대 도면을 확보해 연구에 발을 막 떼었을 뿐이다.

북한의 등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가 제공하는 인터넷 등대 포털 사이트(Lighthouse directory)를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전쟁 전의 등대는 팔미도 등대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전쟁 후에는 북한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진취적인 외형으로 건설되고 있다.

등대 전문가들은 북한의 등대가 원형을 잘 간직해 보존 가치가 높아 문화유산으로서 연구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은 그의 책 '등대의 세계사'에서 "한국전쟁과 이어진 남북분단 속에 북한의 등대는 현재 '잊힌 등대'가 됐다.

북한의 등대는 경관이 뛰어난 공간에 위치해 그 보존 가치가 상당히 높다. 불필요한 개발을 하지 않았기에 100여 년 전 등대의 원형과 경관을 잘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제항로표지협회(IALA)가 지난해 6월 2일 "문화유산으로서 등대의 가치를 재조명하자"는 선언문(인천선언)을 채택한 장소가 인천이라는 점은 인천이 남북 등대 문화유산 교류의 거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당시 인천선언위원장을 맡았던 김종헌 배재대 교수(한국등대문화유산위원장)는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IALA 총회 때도 북한 등대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며 "북한 등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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