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굿바이! 아고라

이충환

발행일 2019-01-2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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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 닫은 포털 '다음'의 온라인 토론장
靑 국민청원 이후 '정치적 의제' 기능 상실
전국 지자체들 속속 도입 '여론 독점' 우려
원초적 이해들만 노골적… 극복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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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포털 다음의 온라인 토론장 '아고라'가 지난 7일 문을 닫았다. 대한민국 제1의 공론장(公論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2004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이날 폐쇄되기까지 15년 동안 3천만 건의 글이 올라왔다. 20만 건의 청원에 대해선 4천500만 건의 서명이 이어졌다. 개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서부터 부조리의 고발, 구태의 혁파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됐다. 2008년 '광우병사태' 이후로는 정치적 경향성을 띤 글들과 청원이 주류를 이루면서 아고라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이 역사적인 온라인 공론장의 폐쇄를 다루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 언론의 기조가 압축(壓縮)이다. 경향신문은 "제2의 명동성당이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평가한 반면 조선일보는 "일부 좌파세력들의 토론장으로 변질돼 버렸다"고 짚었다.

아고라는 왜 문을 닫게 됐을까. 운영사인 카카오 측이 스스로 밝혔듯이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환경과 인터넷 트렌드 변화로 인해 이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새롭고, 강력하고, 매혹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는 얘기다. 카카오 측이 명시하지 않은 또 하나 커다란 이유는 어쩌면 아고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을 '정치적 의제설정' 기능의 상실이다. 청와대가 자체 홈페이지를 개설해 국민들로부터 직접 청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아고라 '청원'의 이용자 규모나 호응도가 급속하게 줄었다. 시민사회 영역에 속해있던 사회적 공론장 기능이 국가로 '이관'되면서 빠르게 위축되고 급기야 막을 내리게 된,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케이스다.

이렇듯 대한민국 최고·최대 온라인 공론장을 폐쇄로 이끌 정도로 청와대의 온라인 국민청원이 히트를 치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온라인 청원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인천광역시도 뒤질세라 지난 해 12월 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맨 왼쪽 상단에 '소통광장' 항목이 있는데 이 항목에서도 가장 왼쪽 위에 '인천은 소통e가득'이라는 시민청원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인천시의 의욕을 짐작할 수 있겠다.

예상했거나 기대했던 대로였을까. 아니면 뜻밖이었을까. 인천시의 온라인 청원 또한 시작부터 흥행(興行)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민청원에 30일 동안 3천 명 이상이 '공감'했다. 청라국제도시 국제업무지구 개발 방향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약속대로 지난 18일 박남춘 시장이 10분20초 분량의 영상으로 답했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사퇴와 같은 인사문제로 귀결된다면 소신 있는 공무를 수행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민청원제도의 취지에도 맞지않다"고 밝혔다. 답변 이튿날까지 조회 수가 4만1천600건을 넘어섰다.

결과야 상식적이라 해도 씁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이게 바람직한 현상일까 하는 물음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민과의 소통과 여론수렴을 앞세워 온라인 청원제도를 독점해나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공론장을 "사회의 공익사항에 대한 다측면적 정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이 공익사항에 관해 발언을 통해 따지고 여론적 압력으로 정부의 정책결정을 통제하고 추적, 폭로, 칭찬과 비판, 책임추궁, 악평과 호평 등에 입각하여 개인들, 사회적 권력자, 국가관리들의 반 공익적 권력남용을 제재하는 쟁론적 논의의 장"(황태연, 하버마스의 공론장이론과 푸코비판)이라고 정의하는데 동의한다면 이런 공간을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온라인 청원제도를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유력한 공론장으로 인정한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공론장을 통해 감시의 객체가 되어야 할 대상들이 그 장을 스스로 운영하는 현실은 모순이다.

아고라는 토론과 숙의를 거쳐 공론(公論)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했다. 아고라를 대체한 공적 영역의 공론장에서도 이미 원초적 이해들만 노골적이다. 연말 연예대상 수상자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올라오는 판이다. 극복할 수 있을까.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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