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잘나가서 행복하십니까?

박상일

발행일 2019-01-24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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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첨단기술 혁신에 과감한 투자 계획
거리 먼 '평범한' 기업 구성원 소외감 느껴
어려운쪽 손잡기보다 잘나가는 쪽 힘 보태
일을 하는 이유, 본래 의미 되찾는 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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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일 디지털뉴스부장
아주 크고 잘나가는 회사가 있다. 세계적인 첨단 기술력을 가졌고, 직원도 수천 명이다. 수출도 많이 해서 이익을 많이 내고 직원들 급여와 복지도 훌륭하다. 하지만 첨단 기술에서 다른 기업들에 밀리지 않으려고 임직원들은 밤이고 낮이고 정신없이 일한다. 일에 대한 심적인 압박감이 커서 몇 년 만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다. 나이가 40대 후반만 돼도 '퇴물' 취급을 당하기 일쑤고, 눈치를 보다 못해 사직서를 낸다. 엄청난 이익을 내지만 상당 부분이 투자자들에게 분배되거나 신규 시설에 투자하기 때문에 가족처럼 일해야 할 협력업체들은 어렵기만 하다.

또 다른 회사가 있다. 특별히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많이 쓰는 생활용품을 정성껏 만들어 낸다. 비슷한 중국제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품질과 디자인이 좋아서 시장에서 꽤 잘 팔려나간다. 10여 명의 직원 중 대부분은 벌써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하고 있다.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라고 하지만 다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며 일 해왔다. 몇몇 임원들은 이 회사에서 자녀들도 함께 일하게 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어느새 다른 직원들과 한가족이 됐다. 작지만 '우리' 회사다.

특별히 어느 회사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그냥 '보통'의 모습이다. 물론 대기업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중소기업들 중에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곳들도 많다. 하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게 최선이고 중소기업에 다니면 '덜 행복하다'가 아니라는 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저 우리가 잘나가는 회사의 어두운 면, 평범한 회사에 있는 행복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성장을 위한 키워드로 '혁신'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간 반도체가 전망이 좋지 않으니 5G, 수소차·전기차, 자율주행, 인공지능, 가상현실, 스마트공장, 드론 등등에서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도 이런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기술 혁신에 몇 조원을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창업 초기 벤처기업이나 일류 기술에 도전하는 기업, 그리고 이들을 아우르는 첨단 대기업들에게 힘이 나게 하는 소식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씁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대열에 끼어들기 어려운 수없이 많은 '평범한' 기업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5G니 수소차니 자율주행이니 하는 첨단기술이나 거창한 정부의 지원계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혁신이 강조되고 통 큰 지원계획이 발표될 때 마다, 이들은 소외감을 삭히느라 쓴 소주잔을 기울인다. 함께 살고 있지만, 그늘에 가려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바로 우리 이웃이고 가족인 그들인데, 숫자로 쳐도 훨씬 많은 그들인데, 자꾸만 우리 시야에서는 멀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포용'을 이야기했다. 이런 '평범한' 기업이나 사람들까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1등 지상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어려운 쪽의 손을 잡기보다, 잘나가는 쪽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다가 자칫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포용'이 쏙 빠지고, '사람중심 경제'에서 '사람중심'이 쏙 빠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앞서 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가기만 할 뿐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 더 급해 보인다.

/박상일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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