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에 빠진다는 것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상상 결과물
도장 이용해 창조한 '스탬프 아트'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취미·놀이
건조한 삶에 에너지 순간적 부여
봄이 오면 '예술 세계' 발견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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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모든 예술은 현실 질서의 억압으로부터 순간적인 탈주를 꿈꾸는 상상적 운동의 결과이다. 물론 예술은 그러한 원심력에 일종의 관습적 형태를 부여하여 매우 구체적인 매혹의 대상이 되게끔 한다. 소리, 색채, 물질 등에 형식을 개입시키면 음악이 되고, 회화가 되고, 건축이 되고, 또 여러 예술 양식으로 번져갈 것이 아니겠는가. 프랑스 비평가인 장 벨망 노엘은 '정신분석과 문학'에서, "꿈, 놀이, 예술의 환영은 억압된 욕망의 변형된 성취이며, 현실 법칙에 길들여진 이들은 두 가지를 잃어버리는데, 그것이 유머와 예술"이라고 하였다. 역시 프랑스 비평가인 조르주 풀레도 '비평과 의식'에서 "놀이와 취향은 가장 매혹적인 자극인 동시에 가장 마르지 않는 몽상의 원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예술은 '꿈(몽상)', '놀이', '취향'과 겹쳐지면서 우리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끔 하는 매혹을 두루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falling in art의 순간이다.

최근 이러한 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여기서 소개하는 '스탬프 아트'는 말 그대로 도장을 이용해 창조해낸 예술 세계를 뜻하는데, 윤정현이 쓴 '스탬프 아트에 빠지다'는 파격적인 친절함과 구체성으로 이 생소한 예술을 살갑게 만나게 해준다. 책에 들인 시간과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책은 스탬프 아트에 관한 저자 자신의 실물 경험을 다양한 시각적 서비스로 알려주는데, 저자는 이 복합적 현대예술에 빠져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우리에게 낱낱이 전해준다. 예술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일반론과 역주행하면서, 그녀는 예술이 행복 체험의 소산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윤정현은 학창 시절 밤샘 공부는 하지 않았어도 미술 숙제할 때만큼은 아침 해 뜨는 것을 볼 정도로 심취했다는데, 그만큼 그녀는 예술과 오랜 연애를 한 셈이다. 이 책은 스탬프 아트가 스탬프와 잉크패드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세계로서, 시작만 하면 배우고 활용하고 장식해가는 확장성이 무궁하게 열린다는 것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여기서 예술은 더없이 행복한 취미이자 놀이가 된다. 이러한 경험적 확장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모양의 스탬프를 이용해 스토리북, 팝업북, 카드, 액세서리 등 세상에 유일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스탬프 아트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falling in stamp art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가장 오래된 예술 양식의 하나로 거론하는 서정시 역시 깊은 행복 체험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일찍이 아는 자보다는 좋아하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는 즐기는 자가 윗길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그처럼 모든 예술은 '즐거워함'에 최종적인 목표가 있고, 우리가 읽는 서정시 역시 조곤조곤 그러한 행복의 순간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나태주 선생의 유명한 작품 '멀리서 빈다'에서는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된다//가을이다/부디 아프지 마라"는 전언을 들려주는데, '나'와 '너'가 서로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내는 상호의존적 행복 체험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더없이 중요함을 암시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이렇게 서정시에 빠지고, 한 편의 서정시는 마음의 '스탬프 아트'가 된다. falling in a poem이다.

이처럼 우리가 예술에 빠진다는 것은, 나날이 가지는 건조한 삶의 사이클에 인지적, 정서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자신을 새롭고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부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니 예술은 이성적 영역을 넓히는 학문과는 달리, 체험의 부피를 키워가면서 상상적인 소망 충족을 해가는 행복 체험의 한 방식인 셈이다. 일찍이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는 세계라 갈파하였다. 봄이 오면, 우리도, 행복 체험으로서의 예술 세계를 발견해가자.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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