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열지 못한 세대, 닫혀가는 세대

윤상철

발행일 2019-02-1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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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페북·밴드·카톡 SNS매체
유유상종·동종교배 네트워크 작동
정치 '적폐 對 개혁'등 흑백균열 심화
소통도 대안도 없이 분열사회 남겨
민주화 불구 '그 그늘' 못 벗어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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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이른바 '밀레니얼세대'가 '꼰대' 586세대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수메르인들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고 점토판에 쓰거나 소크라테스처럼 "요즘 아이들은 폭군과도 같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들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을 괴롭힌다"고 말할 수 없는 한국의 꼰대들은 우왕좌왕할 뿐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태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성인이 된 20대 '밀레니얼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대면커뮤티케이션보다 온라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더 익숙하다. 간결하고 즉각적인 소통을 선호하고 줄임말을 구사하고 막말이나 아무 말도 서슴지 않는다. 수평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에 익숙하고, 정보수집에 능하며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의 세계를 설정하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기성세대와 그들의 사고, 이미 주어진 사회 및 세계에 적응하는 데 어색하다. 불합리성, 불공정성, 불투명성 모두에 적대적이고 고리타분하고 형식화된 절차를 기피한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업무는 스스로 구획하려 하고, 상사의 대화시도를 간섭으로 불편해하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거침없이 뛰쳐나오기도 한다. 그들과 다른 세대와의 소통은 가정과 사회에서 시도되기도 전에 장애에 직면한다.

586세대인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이 있다. 지천명을 넘어섬에도 모두들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 흐름에 몸담으면서 다진 결기가 대단하다. 그러나 촛불집회와 탄핵,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우파정치세력이 거의 몰락하다시피 한 이후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상당하게 동질적인 집단이었지만, 연령효과로 인한 꼰대들에게는 약간의 차이도 크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그들 일부의 공통적인 희망은 '나와 다른 이야기로 나를 침해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평생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부서질까 두려워한다. 종교와 달리 정치는 개인의 자유로운 신념의 영역만은 아니고 서로 간의 관계와 경계를 정하는 일이니만큼 충분히 상호 존중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던가? 평생을 민주주의를 의식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타인을 향한 요구일 뿐 내장된 가치가 아닌 듯했다. 그들을 엮어주던 공통토대인 정치가 화제로 오르지 못하게 되자 그들의 단톡방은 가끔 안부만 전하는 공동묘지로 바뀌어 버렸다.

밀레니얼세대나 586세대에게나 온라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주요한 소통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대는 성장과정부터 대면적, 전면적 소통에 능하지 않지만, 50대 역시 점차 대면적 소통의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20대는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자신과 다른 세대를 수용하지 못하지만, 50대는 이미 경직되어가는 세계관 내로 소통을 좁혀가고 있다.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는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되면서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정보화의 빛과 그림자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보화는 개인의 지식접근이 넓어지고 개인들 간의 지적 교류가 쌍방향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인류 수준의 집단지성을 꿈꾸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이의 인정과 상호 대화보다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생각을 격려하고 극단화시키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20대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부재함으로써 소통의 도구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50대는 그 특유의 꼰대성으로 인해 대화의 소재와 대상들을 제한하게 된다. 여기에 유튜브,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등 SNS매체들은 대부분 개방과 공유의 시대를 열기보다는 유유상종과 동종교배의 네트워크로서 작동하고 극단화된 승자독식 시장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세를 더 심화한다.

여기에 최근 한국의 정치상황은 적폐세력 대 민주개혁세력, 재벌자본세력 대 노동민중세력, 남성집단 대 여성집단, 친원전세력 대 탈원전세력 등 극단적인 흑백의 사회균열을 부추긴다. 즉 사회적 소통방식과 정치적 균열이 상호 악순환하면서 극단적 분열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선민적 자기집단의식으로 무장하거나 악마적 적폐집단으로 규정하거나 상관없이 소통도 없고 대안도 없이 분열된 사회로 나아간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보여준 모습들은 모두 다 민주주의의 넓은 스펙트럼 내에서 가능한 형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처럼 충분히 가능한 사회적 지향이 아닐까? 오로지 하나의 대안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전체주의 혹은 권위주의를 벗기 위해 길고 긴 민주화의 과정을 걸어왔건만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만 같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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