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사법농단과 민주주의의 위기

최창렬

발행일 2019-02-2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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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정당 구도서 파생되는 '정치 사법화'
개혁 않고 한국 민주주의 나아갈 수 없어
재판거래·개입으로 국민들의 믿음 깨져
정치권력과 유착 막는 제도적 보완 시급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민주주의 운영의 핵심원리 중 하나는 견제와 균형이다. 견제와 균형 이론은 몽테스키외가 18세기 영국을 모델로 착안한 원리이며, 국왕, 귀족원, 평민의 의회로 구성된 영국의 체제는 그에겐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를 균형적으로 대변하는 이상적인 체제로 비쳤다. 삼권분립은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미국적으로 변용한 원리이다.

한국정치의 대립적 정당 구도에서 파생되는 문제 중 하나가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정치적 갈등이 정치적으로 해소되지 못함으로써 법률의 판단에 내던져지는 현상은 그 자체로 정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실정법 위반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정당 간 이해가 충돌할 때 타협이 배제된 채 고소·고발의 남발로 이어지는 현상은 정치의 왜소화를 촉진시킨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재판으로 넘겨졌다. 재판거래와 재판개입으로 사법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깨졌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만 100명이 넘는다. 이미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아무도 법원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지 않으며,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사법은 설 땅을 잃었다.

사법부는 국회와 행정부와 달리 선출 권력이 아니지만 국민들은 사법부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 인식했다. 그러나 정치부재의 귀결인 한국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사법의 정치화라는 또 다른 모순을 낳았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동전의 양면이며, 이를 개혁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인민에 의한 지배를 골자로 하는 민주주의와 헌법 및 법률로 제도화된 헌정주의는 모순과 보완의 양면성을 지닌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사법부의 지위와 권한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함으로써 대표성과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다. 그러나 사법부의 지위는 애매하다. 그들은 누구에 의해 대표되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는가? 물론 대법원장은 선출권력인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민의 정치적 결단인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신분과 독립성이 보장되지만 민에 대한 사법부의 책임성은 헌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매하다.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책임성에서 근본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기득권을 온존·강화시키려 한 사법농단은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의 이해일치에서 비롯된 민주주의의 위기다. 또한 사법농단 과정에서 나타난 전·현직 국회의원의 연루 의혹은 선출 권력이라 할지라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관행이 일상화되었음을 보여줬다.

삼권분립이란 입법·행정·사법부 중 한 권력이 다른 두 권력으로부터 견제 받는 동시에, 다른 두 부서를 견제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사법권력은 군사독재 정권 때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능했던 적이 있다. 엄혹한 독재시절에 정의의 수호자로서 온몸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기는 커녕 권력에 기생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강화하고자 했던 한국 사법의 역사에서 양승태 사법부는 민주화 이후에도 교훈을 찾지 못했다.

정치가 사법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사법이 정치에 기대어 권력과 기득권을 강화하려 한 사실은 정치와 사법이 모두 과거 권위주의 때의 관행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사법을 사유화한 대법원장과 그를 추종했던 판사들의 정치권력과의 거래는 공정한 판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김경수 도지사 재판결과를 두고 '적폐판사의 저항'을 운운하는 집권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연루 판사들의 기소를 계기로 사법에 대한 민의 통제를 강화하고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근원적으로 막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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