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중국 베이징에서 꿈꾼 인천시립미술관

정진오

발행일 2019-02-2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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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절 연휴 중국미술관 찾은 수많은 관람객
놀이터·사랑방처럼 일상서 소비할 줄 알아
인천, 자체적으로 지은 변변한 곳 하나 없어
백범 강조한 '문화의 힘' 거저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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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편집국장
중국을 이렇게나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인구는 넘쳐나고, 공기는 탁하다. 음식도 느끼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향내도 도무지 감당하기가 어렵다. 문화적 수준도 우리가 부러워할 만하지는 않다고 느껴왔다. 그냥 나라가 커서 대국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우리의 사소한 생활용품까지 모두 장악한 지 오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 중국제라면 괜스레 수준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한국에 사는 것을 은근히 우쭐해하고는 했다. 중국인들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춘절 연휴가 막 시작되던 지난 1월 30일 베이징 시간 낮 12시, '중국미술관'에 들르기 전까지는 여러 분야에서 정말로 중국을 얕봤던 게 사실이다. 중국미술관에서 그 알량한 문화적 자존심이 이렇게나 한순간에 땅에 떨어질 줄 몰랐다. 20여 개나 되는 전시장에 끝없이 펼쳐진 엄청난 수의 작품이나 그 규모가 큰 대작을 보아서가 아니다. 미술관을 놀이터 삼듯, 사랑방처럼 여기는 그 수많은 관람객 앞에서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이 어린 손녀를 데리고 온 가족도 있었고, 친구끼리, 연인끼리, 부모 자식 간에 온 경우도 있었다. 대개가 휴대폰 카메라로 흥미로운 작품들을 찍어댔다. 아예 돋보기를 가져온 할아버지도 있었다. 우리로 치면 시장에서 물건을 싸주는 비닐봉지를 들고 온 나이 든 어른도 있었다. 신발이며 아래 위로 입은 옷이며, 행색이 영락없는 노숙자 차림이었다. 어떤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 딸 이렇게 셋이서는 김밥을 싸 와서 계단에 걸터앉아 먹고 있었다. 가족 소풍을 미술관으로 온 거였다. 아무리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베이징 시민들이 그림에 관심이 있나 싶었다. 다들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태도는 진지했다. 중국 건국 70년을 기념해 올 1월 22일부터 2월 24일까지 1개월간, 1949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의 산하 풍경 작품을 전시한다고 했다.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키 작은 한 소녀는 작품 옆에다 붙인 작가 소개 표지에 가까이 다가가 까치발을 한 뒤 휴대폰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작품을 누가 그린 건지 꼭 알아야겠다는 진한 호기심을 대번에 읽을 수가 있었다. 가장 압권은 아이들이 그림 도구를 갖고 와서 작품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였다. 어떤 아이는 전시장 의자에 앉아서 제 나름의 그림을 그렸고, 어떤 아이는 작품 앞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걸려 있는 작품을 모방하려는 시도인 듯한데, 그 아이가 그리고 있는 스케치북과 전시된 작품을 비교해 보니 전혀 같은 그림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는 흡족한 모양이었다. 중국미술관에 들러서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만 잔뜩 구경하고 말았다.

중국의 베이징 시민들은 고급 문화를 일상 속에서 소비하고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인천은 어떤가. 기업체(OCI, 옛 동양제철화학)로부터 기증받은 송암미술관 이외에 자체적으로 지은 변변한 시립미술관 하나 없다. 인천시는 지금 박물관과 미술관을 한꺼번에 짓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옳게 가고 있는지 의아해 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국에서 망명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낸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그 문화의 힘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인천시민 누구나가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게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좋은 미술작품은 그 자체로 창의력의 결정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과 우리의 국가적 창의력 차이가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 두려웠다.

/정진오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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