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찾아서]김밥의 환골탈태를 꿈꾸며, 서울 마곡동 '천년김밥'

무게부터 남달라… 김밥 한 줄로 든든하게
천년초·박고지로 건강, 특제 소스로 맛 잡아
일본 호텔 근무 경험 살린 '생연어' 김밥
음식 가짓수 늘리기보다 김밥만으로 승부

편지수 기자

입력 2019-02-25 18: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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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야채김밥은 채소의 아삭함과 박고지의 쫄깃함에 알싸한 와사비향이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다.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

오랫동안 김밥은 가벼운 음식이었다. 식사를 즐길 시간조차 없이 바쁠 때, 종종 식사를 때우는 먹거리였다. 소풍날 도시락에 덜렁 들려 보내고, 편의점 가판대에 서서 라면과 함께 배를 채웠다. 만만하고 손쉬운 서민의 한 끼였다.

그러나 어딜 가나 조용한 수레가 요란하지 않게 뚝심을 발휘하는 법이다. 김밥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이제는 프리미엄 김밥이 대세가 됐다. 잘 만든 김밥이 한 끼 식사가 되고, 맛있는 외식 메뉴가 되는 시대가 왔다. 제대로 된 김밥 전문점을 표방하는 '천년김밥'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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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듬뿍 넣어 '천년왕야채김밥'을 말고 있는 모습.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

정경의·전재윤 부부가 운영하는 김밥 전문점 '천년김밥'은 늦은 오후에도 손님들이 바쁘게 드나들었다. 주문은 키오스크(KIOSK)로 대신하는데, 이미 여러 번 와본 것처럼 익숙하게 주문을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날 가게를 방문한 한 손님은 "개운하고 깔끔해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기분"이라며 극찬했다.

대체 어떤 김밥이길래 자그마치 호텔 레스토랑에 견주는 걸까? 가장 기본 메뉴인 '천년왕야채김밥'만 볼륨이 상당하다. 밥을 얇게 깔고 달걀 지단, 당근, 시금치, 우엉, 박고지, 단무지, 어묵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와사비와 마요네즈를 섞은 특제 와사비 소스를 넣어 꾹꾹 눌러 만다. 김밥 한 줄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 보니 300g이 훌쩍 넘는다. 보통 김밥이 200g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30%는 더 무거운 셈이다.

단면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김밥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식재료인 박고지가 눈길을 끈다. 섬유질이 풍부하고 항노화 물질이 많아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박고지는 조리하기 까다롭다는 이유로 일반 음식점에서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천년김밥에서는 모든 김밥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 있는 기본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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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알찬 천년김밥의 '천년왕연어김밥'(앞)과 천년왕야채김밥.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

김밥을 한입에 넣는 순간 향긋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 찬다. 달걀지단과 알싸한 와사비 향이 잘 어우러지고, 아삭아삭한 채소와 부드러운 어묵 사이 박고지의 쫄깃한 맛이 먹는 재미를 더한다. 두께가 남다른 만큼 꽤 묵직한데도 맛의 균형이 잘 잡혀 질리지 않는다.

생연어를 넣어 지은 '천년왕연어김밥'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김밥이다. 보통 생연어는 물기가 많고 비려서 김밥에는 쓰기 어렵다. 그러나 '천년김밥'에서는 전재윤 사장이 일본 호텔에서 수년간 근무한 경험을 살려 생연어의 육즙과 맛을 그대로 살린다.

'천년왕연어김밥'은 비주얼부터 남다르다. 꽃처럼 화사한 주황빛 생연어가 먹기 전에 눈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훈제 연어보다 월등하게 부드럽고 촉촉하다. 새콤하면서도 고소한 타르타르 소스와 톡 쏘는 와사비 소스의 궁합으로 산뜻하게 마무리한다. 웬만한 연어 초밥보다 연어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맛만 봐서는 잘 알기 어렵지만 평범해 보이는 밥에도 천년초 가루가 콕콕 박혀 있다. 동의보감에 '천 개의 병을 다스린다'고 기록된 천년초는 식이섬유, 비타민, 칼슘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다. 속 재료뿐만 아니라 밥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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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김밥 메뉴판.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

복잡한 김밥 속과 달리 '천년김밥'의 메뉴는 단순하다. 다섯 종류의 김밥과 파채를 가득 올린 라면, 달걀 샌드위치가 전부다. 정경의 사장은 "김밥 전문점이니만큼 김밥을 맛있게 내는 데 주력할 뿐 다른 메뉴는 더 늘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천년김밥'의 김밥은 분식집의 한 메뉴가 아니라 건강, 맛, 크기를 모두 잡은 간편하면서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아직 개업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년김밥은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알찬 김밥 맛에 반한 단골 손님이 이미 여럿인 데다, 주변 회사에서는 아예 단체 주문을 하는 경우가 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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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김밥 가게 내부.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

정 사장은 올해 하반기 다른 지점을 내 더 많은 손님에게 찾아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의 김밥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박고지나 생연어처럼 노하우가 필요한 식재료는 본점에서 손질해 제공하는 등 깐깐하게 품질을 관리할 예정이라고.

마지막으로 손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기쁘냐고 묻자 정 사장은 "어린 아이들도 천년김밥이 제일 맛있다며 우리 것만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좋은 식재료만 써서 제대로 된 김밥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위치: 서울 강서구 강서로 391(마곡동 794) 101호. 가격: 천년왕야채김밥 3천500원, 천년왕소불고기김밥 5천 원, 천년왕연어김밥 6천 원.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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