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북·미 하노이회담에 가려진 3·1절 100주년을 보내며

김정순

발행일 2019-03-06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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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들 회담결과 갑론을박 호들갑
'100주년 의미·과제' 보도엔 인색
비폭력으로 더 빛난 헌신·애국정신
공유하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 중요
'기념비적 축일' 덮는 일 없어야


수요광장 김정순2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지난 3·1절,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늘 그렇듯이 3·1절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하루 반짝 기념행사를 한다. 언론 매체들도 이날을 전후해 기념행사를 다루거나 자체 특집 보도를 하곤 했다. 그리곤 끝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마저도 하노이회담에 가려 조명받지 못한 것 같다.

실제로 매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북·미 하노이 회담 결과를 두고 갑론을박 호들갑스럽게 논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3·1절 100주년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보도엔 매우 인색했다. 심지어 어느 유력 일간지는 3·1절 당일 1면에서 12면을 모두 회담 내용으로 채우고도 성이 안 차는지, 노딜이 여권의 실책 인양 비판적 논조로 일관했다. 물론 '논평은 자유다. 그러나 사실은 신성하다'고 했던 영국 가디언의 편집장 찰스 스콧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지 심리학 연구 결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언론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리고 싶은 것만 관심갖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는 경계와 성찰이 필요하다. 100주년이 되는 3·1절을 눌러가며 매체에 도배된 그 많은 하노이 회담 논평들은 사실을 잘 전달한 것일까? 넘쳐나는 정보로 사실을 왜곡시키지는 않았을까 의문이 들면서 이번 100주년 3·1절은 특별한 언론 보도를 기대했던 터라 실망감 또한 크게 다가왔다.

필자는 돌아가신 애국지사 아버님 때문에 유독 더 3·1절이나 8·15처럼 특별한 날 언론의 보도나 논평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필자의 부친처럼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고 일생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떠난 모습을 지켜본 가족이라 느껴지는 기대일 수도 있겠다.

3·1절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끔 선조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을 기대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발굴, 존경과 추모하는 국민적 분위기를 기대했다.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대했다.

물론 북·미 회담 성과 여부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기대하는 세계적인 열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만큼 더없이 중요한 순간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비핵화와 비폭력은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우리 국민의 열망인데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전 세계가 비폭력을 열망하며 회담에 관심을 보내는 이때, 3·1운동이 비폭력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리고 부각시킬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 싶은 것이다. 비폭력으로 더 빛난 3·1 운동의 헌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 형성 또한 언론의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언론은 적어도 3·1 운동이 세계사적 비폭력의 원형이라는 관점에서 더 관심을 보였어야 했다. 하노이 회담 결과에 대한 보도가 3·1절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역사의 축일을 간단히 덮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문득 오래전 필자가 일본 히로시마 시에 소재한 한 대학의 객원교수 시절, 경험한 일본의 8·15와 이번 우리의 3·1절이 오버랩 되며 그들의 추모행렬이 떠오른다. 덥고 습한 여름날, 종일 이어지는 검은 정장 차림의 긴 상복 행렬은 신기하다 못해 기이하게 보일 정도였다. 원폭에 희생된 슬픔과 그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히로시마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한 대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된 애국지사들을 추모하는 우리 국민들의 추모 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몇 분이나 알고 있을지….

이번 3·1절 관련 언론만 탓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독립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탑골공원은 국민 모두가 기념할 역사적인 장소임에도 빈곤 노인들의 슬럼가처럼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게 바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현주소이자 3·1운동의 이중적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어느 교수의 탄식이 깊게 와 닿는다. 언론도 국민도 모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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