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위선을 넘어 성찰로

신승환

발행일 2019-03-1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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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않는 일상 우리사회 퍼져 있어
5·18 망언·한유총 사태·사법농단
불의 용납하면 되풀이 하게 만들어
아프지만 '치욕·모순' 성찰하는 일
우리를 충만함·행복으로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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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18세기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세계 문명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과학기술 혁명의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는 그야말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그 이전의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모두는 17세기 이래 유럽이 이룩한 근대의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이 근대 혁명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함으로써 유럽 밖에서는 유일하게 그 문화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유럽의 죄악조차 답습했다. 이 모든 역사의 격동을 겪어낸 것이 우리의 지난 100년이었다. 그 야만과 폭력의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서 그럼에도 인륜과 자주를 갈망했으며 나름의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이룩한 시간이 또한 지난 100년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은 역사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변화와 전환을 경험한 때였다. 그 역사와 그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지금의 삶과 내일의 시간을 위해서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과 전망에 있다. 뼈저린 후회와 자괴감이 들지언정 잘못된 역사를 성찰하는 작업, 직면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길을 위해 차디찬 지성과 열망으로 전망하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반성하지 않은 일상이 우리를 옥죄는 현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5·18 광주에서의 학살을 부정하는 망언은 결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반인륜적이며 야만적인 부정을 정략적인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다시금 이런 패륜과 폭력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우리 삶이 왜 지옥 같을까. 이런 야만과 불의를 용납했기에,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벌써 사라졌어야 할 정치적 모리배가 국회란 배경을 무기로 앵벌이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한유총 사태는 조기에 수습되어 사안이 해결된 듯이 보이지만 이 사태 뒤에는 맹목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이 자리한다. 교육의 공공성은 물론, 재산권의 자유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기회임에도 단순히 한유총 해체만으로 이 사태를 덮어두어서는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법농단 문제는 법치국가라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부정하는 일임에도 지금의 대응을 보면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는가.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정략적 보도를 일삼은 언론의 반사회적 태도와 의도적 무지를 넘어서지 않은 채 어떠한 밝은 미래도 전망할 수 없다. 지금처럼 부서지고 망가진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공정한 사회와 미래를 바라는 엄청난 착각이 어떻게 가능할까. 각자가 원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은 물론,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바라면서 지금의 교육체계와 폭망한 학문을 방치하는 현실은 거대한 위선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이란 주술에 사로잡혀 우리 삶을 몰아가는 망상을 깨지 않은 채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가. 거짓이다. 저출산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 맹목적 대응에 헛웃음이 나온다. 일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2번째 국가에서 에너지는 펑펑 쓰고 환경은 무분별하게 파괴하면서 미세먼지는 없기를 바라는 모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100년 서구 근대에 의해 침탈되고 강요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역사와 삶을, 사회와 문화를 성찰하고 전망함으로써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할 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주하기엔 너무도 아프지만 그럼에도 직시해야 할 과거의 치욕과 현재의 모순을 성찰하는 일이다. 힘겹지만 일상의 위선을 깨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우리의 지성적 정직함에 달려있다.

지성적 성찰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다. 지성은 가방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우리가 직관과 감정을 넘어 성찰과 전망의 지성을 수행한다는 데 있다.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을 때 우리 삶과 존재는 의미를 지니며, 그 해명의 작업이 우리를 충만함과 행복으로 이끌어간다. 결단 없이 바뀌는 것은 없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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