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안 들리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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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지. 너는 축복받은 거야." 청각 장애인인 10대 소녀는 인공와우 수술을 앞두고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정은 작가의 '산책을 듣는 시간'이란 소설 중 한 대목이다.

안 들리는 게 능력이고 축복이라고? 뜬금 없는 소리 같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나서 소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말은 욕이었다. 구화(口話)를 배운 뒤 비밀 욕 수첩을 만들고, 소설책에서 생전 처음 보는 욕들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가 옥상에 혼자 있을 때 꺼내어 소리 나게 읽어보며 발음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연습한 결과였다. 소녀에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표현대로라면 '이래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세상은 시끄러웠다. 소리가 온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방향감각도 이상해져서 종종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소녀는 말보다 오히려 수화(手語)에서 더 행복감을 느꼈던 듯 싶다. 구화를 배우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기 전, 수화가 유일한 의사소통수단이었던 소녀의 독백이다. "나는 손안에 투명한 새 한 마리를 기르는 느낌으로 수화를 하며 걸어 다닌다. 새를 쓰다듬듯이." 수화를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문체다. 소설을 읽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자기반성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청각 장애인도 아니면서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다.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나팔로 청각을 일시 마비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받는 수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거나 시도한 철없는 젊은이들이다.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생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차 안에서 나팔을 귀에 대고 1~2시간 동안 인상 찌푸리며 고막을 혹사했다지 않은가. 이 같은 기상천외한 수법을 전수해주는 대가로 최고 5천만원 까지 오갔다니 귀가 아니라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내막이 밝혀진 이상, 이제 그들에게 안 들리는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주홍글씨일 듯 싶다. '병역기피'라는 낙인이 찍힌….

/임성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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