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칼럼]그래도 인사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영재

발행일 2019-03-2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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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바뀌어도 출연진만 다르고 변함없어
청와대 '7대비리 배제' 내놓고도 의혹 나와
인식 바뀌지 않는 한 무용론 끊임없이 제기
그래도 큰 꿈 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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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곧 영화가 시작될 것이다. 뿌연 먼지를 가르며, 영사기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일순간 적막이 흐른다. 초라한 하얀 천 위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긴박한 순간마다 여기저기서 관객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모두 거치고 마침내 여기까지 온 필름에는 시종 비가 내렸다. 그래도 좋았다. 모두 분위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김승호의 '마부'도 아마 그 천막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천막이 걷어지면 사람들은 뿔뿔이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전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었던 공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터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 허전함이란. 급조된 영화관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예외 없이 모두 TV 앞에 모였다. 이제 곧 장관 인사청문회가 시작될 것이다. TV 카메라 조명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지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물론 줄거리는 뻔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의혹투성이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TV 앞에 모인 건 이번만은 뭔가 다르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심한 듯, 또 맥빠진 질문에 뻔한 답을 쏟아낸다.

2000년부터 우리는 TV를 통해 많은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달라진 것은 출연진뿐, 예외 없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의혹, 이중국적 등은 변함없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늘 그 타령이었다. 정쟁의 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수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면피성 답변만을 듣고 결국은 통과의례이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청문회는 막을 내렸다. 그들이 떠난 텅 빈자리 역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적막만 남았다. 그 허전함이란. 그때마다 '청문회무용론'이 제기됐다.

청문회가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끝나자 지난해 청와대는 획기적인 안을 내놨다.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기준안이 그것이다. 위장전입, 불법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아예 공직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지! 역시 촛불 정부는 달라도 무언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의혹 등이 제기됐다. 7대 원칙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실망한 국민을 달래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청문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해서 임명한 장관의 수가 벌써 10명이 넘는다. 지난 1월에는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아 반발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자 청문회도 없이 그를 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인사청문회는 해당 공직에 걸맞은 능력을 가리는 건 물론 임명권자가 발견하지 못한 비리 등의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자는 데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공직 임명 통과의례 정도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청문회 무용론'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나온 7명 후보자 역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는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그래도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초라한 천막극장에서 낡은 영화를 보며 '누군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않았듯이, 이런 한심하고 터무니없는 청문회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는 큰 꿈을 그리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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