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고서산책'

[조성면의 '고서산책']천 년 전의 인생노래, 우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음풍농주' 자유분방한 삶 예찬 詩
'하이얌 시편' 저항감 없는 이유는
인생무상 읊조리며 풍류 즐겼던
두목 같은 만당시에 익숙했기 때문
가끔 허무주의·무상철학 느껴볼만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지갑 속의 돈을 헤아리면서도 밤하늘의 별을 동경하는 게 우리 인생이다.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돈 버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겠으나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에 더 힘들다. 돈을 벌지 않을 수도, 돈만 벌며 살 수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때는 시 쓰고 술 마시는 음풍농주(吟風弄酒)가 제격이라 주장하는 천 년 전 페르시아의 시집이 있다. 한국에서 오머 하이얌, 오마르 하이얌, 또는 우마르 하이얌으로 읽히거나 적는 우마르 하이얌(Omar Khayyam, 1048~1123)의 4행 시집 '루바이야트'가 그것이다.

'루바이야트(RUBAIYAT)'는 4행시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루바이'의 복수형이다. 대단히 금욕적이고 엄격할 것 같은 이슬람 사회에서 일천 년 전에 술과 인생무상과 자유분방한 삶을 예찬하는 시집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루바이야트'는 1859년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1883)가 영역하여 비로소 서구 세계에도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한국 T. S. 엘리엇 학회장'을 역임한 김병옥 교수가 1973년 민음사에서 펴낸 초판본이 최초다. 이후 이상옥(1975), 김주영(1995), 권소향(2012) 등 다양한 번역본이 나왔으나 크기가 한 뼘도 안 되나 사막의 모래 빛깔로 장정한 1973년 김병옥 본에 왠지 더 애착이 간다.



'루바이야트'를 남긴 우마르 하이얌은 시인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다. 그의 생부가 천막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기에 '천막을 만든다'는 뜻의 하이얌이 성(姓)이 됐다.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직업을 성으로 삼는(혹은 부여하는) 언어관습은 세계적 현상이다. 가령 빵 굽는다는 뜻의 베이커(Baker), 방앗간 주인 밀러(Miller), 대장장이 스미스(Smith) 등이 그렇다. 이름은 그렇다 쳐도 개성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로 인생무상과 허무를 찬미하는 하이얌의 노래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허무와 무상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세월의 불가역성 앞에서 인생무상이라는 삶의 진실과 대면하기 싫은 회피심리 때문이거나 또는 이 같은 허무적멸 사상이 개인의 인생과 공동체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윤리적 공리가 판단의 최종심급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란 고작해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존재라는 '야고보'의 말씀이나 모든 게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는 '금강경'의 일구는 쇼펜하우어적 염세주의를 찬미하려는 게 아니라 삶과 삼라만상의 본질이 이러하니 부질없는 욕망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종교적 부정의 변증법이다.

하이얌의 시편들이 우리에게 저항감 없이 쉽게 읽히는 까닭은 두목(803~852)이나 두보(712~770) 같은 만당시(晩唐詩)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평생 풍류남아로 살았던 두목은 기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항상 기생들이 던져준 귤이 수레 가득 채워질 정도라 귤만거(橘滿車)란 별명으로 불렸다. 장편 대하소설을 써내려가도 모자랄 파란곡절 많은 인생사를, 말과 글이 짧은 우리를 대신하여 촌철살인 같은 짧은 시편들에 잘 녹여 내는 두목의 공감주술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두목, 이슬람의 두보라 할 하이얌도 이에 못지않은 절창을 쏟아냈다.

"어떤 이는 이 세상이 즐겁다 하고/ 어떤 이는 저 세상이 복되다 하나/ 나는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부질없다/ 먼 북소리는 듣기만 좋을 뿐"이라는 12번 루바이라든지 "아귀다툼의 인간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애태워 왔나/ 모두가 쓰고도 슬픈 열매인 것을/ 차라리 한 잔 술만 못한 것을"이라 한 39번 루바이는 무상철학의 극치인데, 오히려 그의 이 허무주의가 삶에 지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는 물신주의와 가파른 경쟁으로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가끔은 이러한 허무주의와 무상의 철학을 보감으로 삼아 음풍농주하며 음풍농서(吟風弄書)하는 시적 삶을 누려볼 일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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