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 사적지로 보존해야 할 인천감리서

경인일보

발행일 2019-04-04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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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기념관을 인천 중구에 건립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난 2일 열린 백범과 관련한 독립운동 역사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유창호 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인천이 김구 선생이 두차례 수형생활을 한 인연이 있고, 백범일지에도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라고 특별히 밝혔던 곳임에도 기념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구 기념관의 건립 과정에서 인천대공원에 있는 백범동상과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 이전 문제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백범 김구 동상은 현재 인천대공원에 건립되어 있다. 1997년 인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이 동상 곁에는 백범이 인천에서 모진 감옥살이를 할 때 옥바라지를 했던 모친 곽낙원 여사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인천대공원은 백범과 큰 연고가 없는 곳인데다 접근성도 떨어져 백범의 업적을 기리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김구 기념관 건립 사업은 인천감리서의 국가 사적지화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인천감리서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적지이다. 인천감리서는 청년 김구가 사형언도를 받고 수형생활을 한 곳이며, 모진 노역을 견디며 민족의 지도자로 다시 태어난 단련장이었다. 백범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듣고 분노하여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한 이른바 '치하포사건'으로 인천감리서내 인천 감옥에 2년간 수감됐다가 사형 직전에 무기수로 감형된 뒤 인천의 민족지사 유완무 등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 곳이다. 백범은 1911년 안악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14년 인천 감옥으로 이감되어 이듬해 가출옥할 때까지 모진 수형생활을 하였으며 당시 인천항 축항공사의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인천감리서는 개항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선정부가 설치한 특별행정기구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흔히 인천 개항장을 일본을 비롯한 외세 중심의 역사적 공간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인천감리서는 조선이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국제 통상업무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려 했던 행정기구이자 역사적 흔적이다. 이같은 김구 기념관 건립이나 인천감리서 사적지 복원은 중구의 노력만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인천시가 함께 나서서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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